많은 사람들은
형벌법규의 입법과정에서
자신의 도덕관이나 윤리관, 혹은 철학이
관철되도록 하기 위해
입법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어합니다.
사실은 저도 그렇습니다.
똘레랑스사상에 입각한 저의 자유주의철학을
입법과정에 되도록 많이 관철시키고 싶긴 합니다.
그런데, 그리하여 자신의 도덕관이
입법과정에서 관철되어 형벌법규로 만들어진다면,
자신의 도덕관이나 윤리관, 철학이 승리한양,
자신의 도덕관이나 윤리관, 철학이 남의 것보다 더 우월한양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나 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어떤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마치 형벌법규를 잘 이용하면..
또는 형법법규가
남의 도덕관이나 윤리관, 철학을
침해하거나 지배할 수 있지도 아니한가 하는...
이러한 착각은
형벌법규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큰 힘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반증이기도 하고,
그러한 착각들이 모여서
형벌법규가 이 사회 도덕의
가장 큰 기준으로 이용되는것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형벌법규는 오직 깡패같은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있는 탓에
일종의 강제력을 지니고 있을 뿐
개인의 도덕관이나 윤리관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고
개인의 도덕관이나 윤리관을
바꿀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형벌법규는 그 강제력을 빼면
이 사회에서 가장 약한
종이호랑이 규범에 불과합니다.
형벌법규가
도덕보다 약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법철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합니다.
물론, 형벌법규가 지닌 강제력 때문에..
형벌법규가 도덕보다 약하다는 게
실제로 가슴에 와닿기는 쉽지 않지만 말이죠.
강제력을 곧 강함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도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우리들의 비열한 모습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형벌법규가
자신의 윤리관을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어떠한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어떠한 형벌을 과할 것인가에 관하여는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광범위한 형성권이 인정된다는 것이
우리 헌법재판소의 입장입니다.
이러한 헌재의 입장에 따르자면,
따라서 반드시 부도덕한 일만
금지되라는 법도 없고
반드시 남의 권리를 침해한 일이나
해악을 많이 끼치는 일만
금지되라는 법도 없게 됩니다.
(물론 형벌법규가
도덕에 관한 일을 다루는 것은
되도록 지양해야 하는 일이고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긴 합니다만..)
헌법재판소의 의견을 따르자면,
특히, 음란물과 같은 것의 유포 등은
그것이 개인의 사생활로서 보호를 받는다고 볼 이유도 없어서,
이러한 형벌법규에 대한 입법자의 형성권이
사생활의 수준으로 제한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입장에 따르면,
형벌법규란
개인의 도덕가치관이나 윤리관과
전혀 무관한 것이어서,
설사 개인의 도덕가치관*윤리관과
형벌법규가 지향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도덕가치관이나 윤리관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설사 입법자가
자신의 도덕가치관에 비추어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판단하여
그것을 형벌이 금지하는 행위로 결정하였다고 하더라도,
입법자가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에 따라 제정한 형벌 법규의
여러 가지 제정 배경 중 하나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입법자가 자신의 도덕가치관을 수범자들로하여금
강요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수범자가 법을 지킨다는 것은
입법과정에 반영된
입법자의 도덕관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법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주어진
의무 중 하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