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8일 월요일

무상공공서비스. 공원은 왜 괜찮고, 버스는 왜 안됩니까?

이른바 무상복지라고 불리는, 보편적 복지에 대해서 이유 없는 거부감을 가지신 분들이 많습니다. 안 될 거라고 단정지어놓고, 가지가지 이유들을 갖다붙이는 모습이 참으로 가관인데요, 각설하고 하나만 묻겠습니다.

무상서비스. 공원은 되고 왜 버스는 안됩니까? 도서관은 되는데, 왜 버스는 안됩니까? 도로는 되는데, 왜 버스는 안됩니까? 무료도로를 없애고, 길마다 통행료를 받는다고 하면 군시렁 대실 분들이, 유독 버스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인색하시죠?

공 원. 여가시간을 가질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재화입니다. 도로. 자가용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재화입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낸 세금을 같이 사용하는 건 괜찮고, 왜 버스는 안되는 겁니까?

누가 그 차이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2014년 4월 27일 일요일

피눈물나는 비정규직 문제. 방법은 이것 뿐이다!


“정규직전환”을 소망하는 비정규직근로자의 목소리를 쉽게 접할 때마다, 또 “비정규직철폐”를 요구하는 진보정당, 진보단체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나는 걸 넘어서서 측은함마저 느낄 때가 있다. 과연 우리의 경제현실에서 정규직 전환이나, 비정규직 철폐가 과연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사용자는 왜 정규직으로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가? 쉽게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른바 이 고용유연성 때문에 비정규직을 채용하면서도, 사용자는 그 고용유연성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는다. 고용유연성에 대한 비용은 고사하고, 사용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저렴하고 더 말잘듣는 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는 방법이 “비정규직”이다.

최 선을 다해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결정을 내릴 것을 요구하는 시장경제 하에서, 이러한 형태의 비정규직고용은 사용자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지도 모른다. 굳이 임금도 비싸고 해고도 어려운 정규직을 사용할 이유가 사용자에겐 없다. 결국 고용유연성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작금의 비정규직 제도는 신분제도의 또다른 이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해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정규직 근로자로 인해 사용자가 향유하고 있는 고용유연성에 대한 댓가를 사용자로 하여금 지불하게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차별금지법은 당연한 일이고, 거기에 더해 사용자에게 비전형고용부담금을 부과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비전형고용부담금을 임금의 일정비율로 정해놓고, (10~20%선) 기간제근로자, 시간제근로자, 파견근로자 등 모든 고용형태에 부과하자는 것이다. 사용자가 이 부담금을 면하기 위해서는 그 고용형태가 “기한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와의 근로계약 즉 정규직 근로계약에 의한 것임을 입증해야만 한다.  국가는 사용자로부터 그 부담금을 징수해서, 해당 근로자에게 환급해준다.

만약, 사용자가 이 부담금을 면탈할 목적으로 근로자와 이면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있다면, 근로자는 퇴직 후라도, 국가에 신고하여 근로기간 동안의 비전형근로부담금을 소급하여 받아낼 수 있다. 비전형근로부담금을 소급해 받아내기 위해 근로자는 한 가지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 자신의 근로가 정규직 근로가 아니었고, 따라서 사용자가 자유롭게 자신을 해고하거나 근로계약만료 후 재계약을 거부했다는 것.

비전형근로부담금. 이 제도가 도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비정규직근로자의 임금이 정규직 근로자보다 높아지게 된다. 딱 비정규직고용부담금만큼.

같은 일을 하면서, 정규직보다 수입이 높은 비정규직 근로자. 상상이 안가는가? 그러나, 이것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고용불안에 노출된 비정규직근로자들에게는 이것이 곧 공정한 거래인 셈이다.

비정규직보다 수입이 낮은 정규직 근로자. 상상이 안가는가? 비정규직근로자를 고용한 사용자가 고용유연성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듯, 정규직 근로자들 또한 고용안정성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당장 그림이 안그려진다면, 우선 지금의 방송사 고용현실을 상상해보라. 정규직 PD나, 아나운서들보다 훨씬 수입이 높은 비정규직 MC, 연기자나 비정규직 성우들을 볼 수 있다.

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할까? 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들이 일을 배우고, 경력이 쌓이고, 실력이 검증된 후엔,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전환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고용은 불안하지만, 수입이 더 높기 때문이다.

물 론 회사의 울타리 밖으로 나갈 자신이 아직 없거나, 고용안정성을 원하는 사원들은 그대로 정규직으로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높은 수입을 원하는 사원들은 사표를 내고 회사문을 박차고 나가 비정규직이 되길 원할 것이다.

사용자의 입장은 어떤가? 비정규직은 사용자에게 고용유연성을 확보해주지만, 비용을 증진시킨다. 따라서 숙련된 직원들이 사표를 내고 비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거나, 다른 회사로 떠나가는 것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작지 않은 손해다. 반면 비정규직인 숙련사원이 정규직 재입사하는 것은 회사의 입장에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회다.

회사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직원들의 직무만족도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비전형고용부담금제도는 이렇게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의 전반적인 노동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는 제도다.

재 계? 당연히 반대하겠지. 걔네들이 언제 자기들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에 찬성하는 것을 본적 있는가? 그래서 현실성이 없다고? 그렇다면, 지금처럼 그냥 살면서, 누군가의 피눈물나는 희생 하에서만 존속할 수 있는 경제성장, 누군가의 피눈물나는 희생 하에서만 존속할 수 있는 정규직생활의 달콤함을 그냥 계속 누려보시든가.

도대체 그놈의 현실성 타령 때문에,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나 이모양 이꼴로 유지될 수 밖에. 별 수 있겠는가?



2014년 4월 21일 월요일

딸이나 여동생에게 성매매를 권장할 순 없습니다.


딸이나 여동생에게
성매매를 권장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매매를 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막을 방법도 나에겐 없습니다.
내가 하랜다고 하고,
하지말랜다고 하지않겠습니까?
다만, 만약 그들이 성매매와 관련해서
저에게 진로에 대한 상의를 해온다면,
난 다행스럽고 기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동안 내가 그들과
굉장히 잘 소통해왔다는
뜻일테니까요.
친오빠나 아빠에게
자신의 성매매에 대해 상의를 할 만큼
친밀한 여동생이나 딸을
저는 일찌기 본적이 없습니다.

성매매처벌에 대한 찬반토론을 하는 도중,
"만약 네 딸이나  네 여동생이 성매매를 하겠다고 하면 어쩌겠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을 받고 해드린 말.

가끔은 이렇게
성매매처벌에 대한 저의 반대를
성매매에 대한 찬성 내지는 권장으로
오해하시는 분을 만나게 됩니다.



2014년 4월 20일 일요일

담배를 전문의약품으로


사강의 시대와 달리, "나를 파괴할 권리"는
적어도 흡연에 있어서 이제 유효하지 않다.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받는 상황을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사회국가에서
흡연은 사회적 건강비용을 현저히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옆 사람의 세금을 담보로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행위를
단지 "나를 파괴할 권리"로 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금연을 위해서 

가격을 올리는 정책이 얼마나 실효를 누릴 지 의문이다.
물론 당국으로서는 생각할 수 있는 제일 편한 정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로지 마약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담배유통에
범죄단체가 개입하게 될 계기만 마련하지는 않을지...

흡연이 질병이라고 생각해본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담배를 전문의약품으로 만들어놓고,
의사의 진단을 받아 처방전을 받고
그 처방전으로 약국에서만 구입해서 피우도록 하게 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의사들은 흡연이 질병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우선 생명보험료와 암보험료가 낮아질 수 있다.
보험에 가입할 때, 흡연여부를 물을 것이고,
위험률이 낮은 비흡연자는 당연히 보험료가 깎이겠지?
가입자가 거짓말을 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가입자의 의료기록을 통해
가입시 진술이 거짓임을 밝혀서
보험사가 면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0일 목요일

너는 너무 냉정해. 당신은 왜 그렇게 냉정한가요?


다른 사람으로부터 냉정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한테
그 말을 자주 쓰는 사람들도 있죠.

너는 너무 냉정해.
당신은 왜 그렇게 냉정한가요?
누구누구는 너무 냉정해~

실제로 상대방이 유난히 냉정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한테만 특별히 냉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의 즐거움의
쥬디 윌리암스에 의하면
무조건 그렇지는 않습니다.

차갑다는 말을 자주한다면..
말하는 사람한테도 문제가 있습니다.

가령 그들은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큽니다.
그러니 필요이상으로 실망할 때도 많죠,

그러나 그 실망을
자신의 지나친 기대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무심하거나
냉정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기대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상대방은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베풀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당연한 것을 안해주는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 됩니다.

쥬디윌리엄스는 그런 사람들을
응석받이 어른이라고 말합니다.

그 응석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길들여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오래 길들여져서
저절로 습관이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응석받이 상태로
계속 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감정적으로 자립할 만한
자신감이 없어서입니다.
혹은 자립할 필요를 못느껴서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문득 자신의 얘기 같았습니다.
자신이 요즘 새로 발령받아온 동료에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다행히 직접 말로 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 자주 생각했죠.

너무 냉정하네..
특히 나한테만 냉정하게 대하는 것 같은데..
대체 왜 그런 걸까?

생각해보니 그 동료만이 아닙니다.
최근에 우연히 친한 친구의 친구를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 대해서도 자꾸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낯설어서 그런가 싶으면서도

볼 때마다 섭섭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보니
그들 탓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응석받이였나 봅니다.
왜 나한테 더 잘해주지 않느냐고
어리광과 응석에
잔뜩 젖어있었나 봅니다.

미안하면서도 변명이 하고 싶어지긴 합니다.
실은 그들과 더 빨리 친해지고 싶었죠.
빨리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이 맘에 들고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냉정한 사람들로 만들었으니
더 빨리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멀어질 뻔 했습니다.

이제 응석이나 어리광이 아닌
보다 어른스런 맘과 태도로 대하겠다고 약속해봅니다.
그러고 나니 두 명의 따뜻한 친구를 새로 얻은 듯
기분이 좋아집니다.


출처 : 오후 네시 유리창너머 에세이.
KBS 클래식FM 노래의 날개위에 2014년 4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