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7월 30일 금요일

왕따가 두려운 진짜 이유




출처 : 황임란, <독자칼럼>,《한겨레》1999년 7월 30일자

얼마 전 대학교 1학년 여학생이 상담하러 왔다. 요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것 같아 죽고만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 여학생은 중.고등학교 때는 인기가 '캡'이었다고 한다.요즘 가장 난무하는 단어의 하나가 왕따다. 집단 따돌림의 은어인 왕따가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된 것은 학교 폭력과 더불어서일 것이다. 왕따와 캡. 두 단어는 모든 것을 가지지 않았으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슬픈 일이다. 우리의 사랑방 문화, 두레 문화는 그렇지 않았다.
인간은 집단에의 소속감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자기에게 자신을 갖고 혼자 있는 참다운 고독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인기 캡이 아니어도 나를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사람, 집단에 포함되는 것도 좋지만 어떤 중요한 순간에는 과감히 집단을 나올 수도 있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집단인이 될 것이다.
문득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씨에 대한 한 글귀가 생각난다. 홍씨는 명문대학 출신으로부터, 기득권에 굴복해 자신의 이념을 저버리는 속인들로부터 스스로를 왕따시키고, 이국 땅에서 왕따당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라는 내용이었다.

누가 왕따를 두려워할까.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남에 의해서만 확인받아야 하는 사람, 곧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상담과정에서 그 학생은 점점 왕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인기 최고가 아니면 소외되는 것은 아닌가 하며 전전긍긍하던 자신의 모습을 여유있게 바라보게 됐다. 지금이 전보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최악은 아니라는 것을 웃으며 얘기하고 다음 상담을 약속한 뒤 돌아갔다. 내 얼굴에도 살며시 웃음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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