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1일 목요일
사제간의 충격적인 사랑보다, 그 응징이 더 변태스러운 이유
1.
우리 법은 13세 미만의 “부녀” - 사람이 아니라, 여자에 국한한 것에 주목하자 -와 간음한 죄를 강간과 다름 없이 취급한다. 13세 이상의 부녀는 문제가 조금 달라진다. 그것은, 13세 이상의 부녀의 경우, 간음에 대한 동의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성이 대상인 경우에는 문제가 또 다르다. 법은 여성이 강간을 할 능력이 없다고 보는 탓이다. 강간은 남자만이 범할 수 있는 죄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남자를 상대로는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아직 우리 법은 동성애자를 인정하지 않고 않아서, 동성간의 강간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남성을 대상으로는 이래저래 강제추행죄만이 문제될 수 있을 뿐이다. 강제추행죄 또한 13세 미만의 경우, 동의 여하를 불문하고, 추행죄와 같이 보지만, 13세 이상의 경우, 동의능력이 있는 것으로보아,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경우 법은 간섭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13세만 넘는다면, 즉 중학교1학년 생일이 지나면, 상대방의 강간이나, 추행을 합법화시킬 수 있는 동의능력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고 한다.
물 론 이게 못마땅한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중고교생의 경우, 자기 또래끼리라도 몸으로 사랑했다는 것이 드러나면, 일탈 내지는 비행으로 보고, 퇴학이나, 정학 등의 처분을 받는다. 법으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가 그렇게 녹록한 건 아니다.
2.
그 런데, 이렇게 법이 보장한 성적자기결정권을 십분 발휘한 사건이 발생했다. 35세 교사가 20살 차이나는 제자와 사랑을 나눈 일이 발각된 것이다.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사건이다. 해외토픽에만 나오던 사건이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진 거다.
놀랄만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스무살 나이 차이에 놀라고, 교사와 제자 관계에 놀라고! 남성의 어린 나이에 놀라고! 여성이 초등학교학생을 자녀로 둔 유부녀라는 사실에 놀라고!
네 가지 중에 하나만 걸려도 19금 영화가 될 법한데, 그런 일이 네 가지나 겹치는 엽기적인 사건이니, 보통 사람의 놀란 맘은 오죽하랴. 그러나 아무리 놀랐기로서니, 그 마녀의 얼굴을 봐야겠다고? 마녀의 얼굴을 공개한다고?
이 사건의 가장 비통해야할 피해자는 여교사의 남편이다. 그 외의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한 지분이 없다. 여교사의 자녀나, 남학생의 부모를 언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차피 자식의 인생은 자식의 것이고,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것인 법이다. 자식의 인생이 지껀가? 부모의 인생이 지껀가? 욕하거나 분노할 자격도 한정적이다. 남의 사! 결국은 당사자들의 문제 아닌가?
그런데, 심지어 부모도 아니고, 자녀도 아니고! 이 사건에 아무 지분이 전혀 없는 분들께서, 마녀의 얼굴을 꼭 보고야 마시겠단다. 그리고 그걸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마녀의 얼굴을 꼭 공개하신댄다. 그리고 도대체 뭘 위해서인가?
3.
마녀 한명 사냥하겠다고, “마녀”로부터 이미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이 어리석은 짓들. 그게 어리석은줄 몰라서, 그러는 건가? 아니면 머리로는 알면서도, 재미삼아 그러시는 겐가?
변 태의 구성 요건은 행위의 엽기스러움에 있지 않다. 상대방의 동의 여부에 있는 것이다.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손만 잡아도 변태다, 반면, 동의만 있다면, 세상에서 어떤 엽기스러운 짓도 사랑인게다. 동의를 결여한 행동이 변태스런 이유는 상대방의 고통을 자기 쾌락의 원천으로 삼는 탓이다. 다소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사랑보다, 그것을 응징하고자 얼굴을 공개하겠다는 행각이 변태스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건에서의 얼굴공개? 수단이 정당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목적 또한 정당하지 않다. 침해는 더 있을 수 없는 최대치로 치솟았으며, 법익의 균형성도 무시되었다. 과잉금지의 원칙을 내팽겨친게 아니다. 일부러 놀라운 일을 핑계삼아 극단적인 과잉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행할 수 없는 변태스러운 짓이다. 시원한가? 꼴릿한가? 공분을 부추기는데 성공하셨으니 황홀하신가?
문제는 마녀에 대한 얼굴 공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을 언론에 제보하거나, 확인시켜준, 수사기관 책임자는 누구인가? 피의사실공표만으로도 큰 죄일진데, 피의사실도 아니고, 단지 입건된 후, 종결된 사실을 공표한 자에 대해 이 사회는 왜 이렇게 관대한가? 이 사건 1보를 쓴 매체와 기자를 추적해, 알려줄 용감한 네티즌 수사대는 없는가? 아하! 비열한 그대들. 약자앞에서만 강자였던가?
4.
솔직히 두 남녀에게 드는 안타까움은 엽기스러워보이는 사랑보다는 뒤처리에 있어서의 대책없는 솔직함에 있다. 바보인가? 솔직할 일이 따로 있지! 목숨 걸고 잡아떼야만 했다. 더구나 이렇게 병든 사회에서 말이다. 묵비권은 도대체 뭐하라고 써먹는가?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나 뿐일까?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는 바는 파쇼적인 도덕교과를 대체할 인권교과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자기 수양과 절제를 강요하는 파쇼적인 도덕교과의 실패는 이미 증명되었다.도덕적인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적어도 어리석고 어설픈 집단광기적 도덕깡패들의 의협심 때문에, 침해되는 인권의 침해라도 최소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형사미성년자가 아니라면 적어도 묵비권과 무죄추정의 원칙, 통신비밀을 보호받을 권리, 공표하지 말아야 할 사생활의 내용 정도는 가르쳐둬야 한다. 그게 공정한 거다, 그리고 그게 정의로운 거다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