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2일 금요일

착각이라는 죄. 고은태를 논한다.


먼저 피해여성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성희롱이 맞다. 인권침해다. 피해여성께서 느끼셨을 불쾌함과 당혹스러움에 심히 공감한다. 피해여성께서는 이 사건에 대해 매우 현명하게 대처하셨다고 생각한다. 부디 하루 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나시길 바란다. 같은 남성으로서 사죄한다.
고은태를 편들어줄 생각은 없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두 번 만난 그는 까칠했다. 재수없었다. 게다가 그는 양아치스러웠다. 나에게 양야치스러움이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함을 뜻한다.

그러나 오늘 아침. 고은태가 겪고 있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목격한 나는 왠지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도대체 그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

옳다. 그는 유부남이다. 불륜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대해 비난할 수 있는 지분이 없다. 그에 대한 비난은 그의 처와 가족의 몫으로 남겨두자. 피해자와 우리는 그의 도덕선생님이 아니다.

감히 20살이나 어린 사람한테 어떻게 그러냐고? 미안하지만, 남자라는 동물들은 그런 욕망을 마음속에서 늘 달래며 산다. 그게 다 완전하지 않은 결점투성이 인간인 탓이다. 어쩌랴? 나 또한 그러한 것을. 그러나 욕망과 본능이 죄인가? 아니다. 욕망과 본능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런 욕망이 없는 자여! 고은태에게 돌을 던질지어다.

취향이 엽기적이라고? 하긴 그가 한 것으로 알려진 멘트가 좀 노골적이고 엽기적이긴 하다. 그러나 어쩌랴? 그걸 꿈꾸는게 결점투성이 인간인 것을? 남과 다른 것을 꿈꾸는게 죄가 될 순 없다.

남을 비판하고 사회정의를 외치는 사람에겐 일반인 이상의 도덕과 윤리가 요구된다고? 미안하지만, 성인군자만이 사회정의를 외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하지 않은 결점투성이 인간들이고, 사회정의는 누구나 외칠 수 있다.

그가 성희롱을 위해서 권력을 이용했다고?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권력을 이용했다는 어떤 징후도 나는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그의 그런 행동이 폭로되는데 그의 권력이 도움이 되었다는 게 옳지 않을까?

부적절하고 부도덕한 행동이 결코 용서받지 못할 변태짓으로 전환된 지점은 “착각”에 있었다. 그렇다. 그는 착각했다. “상대방도 그런 대화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권력자”의 착각은 여러모로 위험했다.

불편하게 들리겠지만, 이 “착각”을 뺀다면, 그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인권적이다. 그는 인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남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인권의 시각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관계에 있어 동의의 중요성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자유로웠다. 게다가 “착각”까지 했다.

적어도 인권에 대해 일관적인 그는 “착각”의 책임과 대가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했다.

착각의 대가 치곤 지금 그가 치러야 할 것이 너무 크다. 한 때 피해여성으로부터 권력자로 받아들여지던 그는 지금 선정적 소재를 사냥하는 언론과 네티즌들에 대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려운 약자가 되었다.

물론 착각이 알리바이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그의 착각으로 인해 한 여성이 너무나 큰 고통을 겼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착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지금 고은태의 착각에 분노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고은태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지나친 기대와 한 결점많은 인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대”의 폭력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결점 많은 한 인간을 자신의 주관적인 기대라는 잣대 속에 가둬놓고, 그 잣대 밖으로 벗어났을 때, 분기탱천하는 건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 폭력성은 지금 공공의 적이 된 고은태와 네티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분모가 아닐까?

아무리 훈련받은 인권쟁이라도, 한순간 긴장을 늦추면 인권침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인권을 공부하면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인권침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고착된 것이 아니라 관계에 따라 변화한다. 그리고 결점투성이인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지 인권침해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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