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덕의 속옷노출 . 보통의 속옷도 아니었다. 생식기만을 감싸는 주머니와 줄로 된 팬티를 생각해보라. 그걸 이계덕이 직접 입고 찍은 사진들.. 누가봐도 민망하고 낯 뜨거운 사진들이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심지어 반드시 가려야 할 부분을 가리지 못해 스스로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도 있었다. 단지 속옷 사진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페북에서만 공개하고, 관련 기사에서는 한 컷 올리지도 못한 이계덕.
음란이란 인간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전체적으로 보아 하등의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우리 법원의 견해다. 이러한 법원의 해석으로 음란물의 판단은 자의성을 배제한채 명확성의 원칙을 확보했다. 또한 이러한 법원의 해석에 비추어보아, 이계덕의 사진들은 음란물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자의적이지 않은 판단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했다.
우선 음란물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하자. 나 역시 그러한 민망한 음란물에 대해서 권장할 수는 없을 지언정, 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주장은 주장일 뿐. 매우 슬프게도 법과 법원은 그와 같은 나의 주장에 기속되지 않는다. 법관은 오로지 법에 법에 대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재판할 뿐이다.
그래서 물어봤다. 그 속옷입은 사진을 통해 전하고 싶은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사상적, 의학적, 교육적 메시지가 있었나? 그런데, 이계덕은 그것이 그냥 이뻐서 올린 거란다. 속옷이 이뻐서 속옷을 입은 자기 깊은 속살까지 같이 공개했다는 것이다. 그냥 이뻐서 올렸기 때문에, 어떤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계덕의 주장이다.
이계덕의 말대로라면, 어떤 음란물을 올리더라도, 올린 사람이 "이뻐서 올렸다"고 주장하면 법원이 문제 삼지 않아야 할 판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음란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처럼 견해를 같이 하지 않는 법도 있게 마련. 그러한 법이라고 해서 복종하지 않고 무시해도 좋다는 논리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기자가 그러한 안일한 자기 중심적 태도로 법을 바라보고,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기 이를데 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사를 쓰기 전 이러한 정보를 담은 포스트를 소개해주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이계덕은 자신의 기사에서 여전히 규정의 모호함과 자의성 타령이다. 자신의 기사를 통해 음란물 규제와 페북의 조치에서 문제되는 것은 규정의 모호함과 자의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음란물 규제에 있어서 명확성의 원칙에 대한 논란은 이미 끝났다. 페북의 정책도 우리 법원에서 확립된 기준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적용의 과정에서 일관성을 갖추지 못한 점은 보이는데, 그것은 어느 집단의 법적용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계덕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오류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기사부터 질러놓고 닥치면 생각하잰다. 미리부터 생각하는건 복잡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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