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4일 수요일

오늘 아침 켈시라는 미국 꼴통 얘기를 읽고, 생각이 많아졌다.


미국 식약청에 켈시라는 박사급 꼴통이 하나 있었단다. 이 사람이 신입사원으로 식약청에 들어가서 처음 맡은 업무는 신약신청서평가업무. 그의 책상위에 놓인 첫 신청서는 독일의 제약사 그루넨탈이 개발한 진정제 탈리도마이드였다.

이미 3년전부터 유럽에서 널리 팔리고 있던 약이었다. 심지어, 임신부의 입덧 방지제로도 처방될만큼 안전하다고 알려져있었다. 그런만큼 식약청 허가는 미국시판을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신입꼴통 켈시는 쉽게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단다. 약품의 독성과 효과 등에 대한 추가 정보를 요구했단다. 회사 측이 제출한 자료가 부족하는 이유였다. 추가자료요구는 한번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 시판사인 머렐은 똥줄이 탔다. 허가는 떼어놓은 당상으로 여기고 이미 창고에 탈리도마이드를 가득 비축해뒀기 때문이다. 전방위 로비를 펼치며 신입꼴통 켈시를 압박했다. 식약청 고위층에게 켈시가  "까다롭고, 고집 많고, 비합리적인 관료"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꼴통 켈시가 이러한 압박을 견디는 어느날이었다. 영국의학저널에 탈리도마이드가 팔, 다리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글이 실렸다. 6개월 후 유럽에서 탈리도마이드가 기형아 출산을 유발한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약품은 곧바로 전량 회수됐다. 그러나 그때까지 임신부의 탈리도마이드 복용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팔, 다리가 없거나 눈과 귀가 변형된 채로 태어난 기형아는 1만2천 명에 달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는 17명에 그쳤다. 모두 머렐 사가 허가 이전에 1천 명의 미국 의사들한테 연구 목적으로 나눠준 샘플로 인한 피해 뿐이었다. 꼴통 켈시가 쉽게 시판 허가를 내주지 않은 덕이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전 세계를 뒤흔든 후 곧바로 워싱턴포스트는 꼴통 켈시를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켈시는 소신을 지킨 강직한 공무원의 표상으로 부상했다. 곧 미국 전역의 스타가 되었다. 대통령은 "신약의 안전성에 대한 켈시 박사의 탁.월.한. 판.단.력.으로 미국내 기형아 탄생이라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며 공무원에게 주는 최고 상을 수여했다. 얼마전 켈시가 101세의 나이로 숨지자, 미국 언론은 켈시를 ‘20세기 미국 여성 영웅’로 추켜세우며 대대적으로 애도했다.

이 얘기를 읽고 난 의문이 들었다. 켈시는 영웅이 되었다.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는 결과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과연 백악관의 말처럼 켈시의 탁월한 판단력 때문이었을까? 만약 켈시가 꼴통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까다롭지 않고 유연하며, 합리적인 신입사원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다. 여전히 까다롭다고 하더라도, 만약 제약회사의 전방위로비를 버텨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수많은 아기들의 희생 후에, 혹시 만고의 역적이 되지는 않았을까?

도대체 대중들이란? 그들에게 중간은 없다. 영웅이 아니면 역적이다. 결과만 보일 뿐, 과정은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켈시의 업적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가 칭송을 받아야 한다면, 수많은 목숨을 구한 결과 때문이 아니다. 로비에 맞서 힘겹게 원칙을 지켜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원칙을 지킨다는 게 이처럼 개인적으로는 괴롭고, 험난하며 고통스러울 수 있다. 더구나 원칙을 지킨다고 해서 켈시처럼 로또를 맞으란 법도 없다. 오히려 꼴통으로 찍히고, "까다롭고, 고집 많고, 비합리적인 관료"로 술자리 안줏감으로 씹히며 평생을 살아갈 수밖에.
 
눈물겨운 수많은 희생이 있은 후에,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는 거?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희생의 책임이 아니라, 꼴통으로 찍히기 싫어서 원칙을 포기한 책임이어야 한다.
 
평소에는 원칙을 지킨다고 꼴통 취급하다가, 만에 하나 희생이 생기면 역적 취급하는 사회. 이런 비합리적인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도 각자의 몫이다. 결국 폭탄을 피하고, 켈시가 맞은 것 같은 행운을 기원하는 수밖에 과연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해법이 뭐냐고?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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