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4일 수요일
인권과 기본권
1. 인권 vs 기본권
좀 어려울 수 있겠는데, 오늘은 인권과 기본권의 차이를 알아보도록 하자. 얼마 전에 유시민이 차이나는클라스에 출연해서 국가와 정부의 차이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런 비유가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것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거에요. 상상속에서. 우리가 자아를 가지고 있잖아요? 우리 몸을 다 해부해도 자아가 없어요. 분명히 인격 자아 이런 것이 있는데, 우리 몸 어디를 해부해도 인격이나 자아 같은 건 없어요. 인권? 없어요. 인권이 눈에 보이냐요? 손에 잡히나요? 우리가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물질적으로는 없는 거에요. 사람들이 믿기 때문에 있는 거에요. 국가도 그래요. 국가도 어디가서 곡갱으로 땅을 파봐도 국가가 안나와요. 국가는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거에요. 실제로 존재하는 건 영토가 존재하고 국민이고, 군대 경찰이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국가는 우리가 실제 있다고 믿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건 정부죠. "나"라는 자아의 모든 의지는 나의 행위를 통해 나타나듯이 국가의 의지는 정부의 행위를 통해서 실현되고 드러나는 거죠. 그런데 정부와 국가는 같지 않아요. 정부가 사라져도 국가는 존재할 수 있고요. 정부는 교체되어도 국가는 영속해요. 국가와 정부는 같지 않지만, 현실에서 국가는 정부를 통해서 자기 모습을 드러내죠. 그래서 우리가 국가를 개선하고 싶으면, 정부를 개선해야 되요. 정부는 누가 구성하나?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서 구성하죠.”
알다시피 유시민은, 국가와 정부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했는데, 나는 이 차이가 인권과 기본권의 차이를 설명하는데도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권리? 그것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물질적으로는 없는 거다. 사람들이 믿기 때문에 있는 거다. 기본권이란 헌법에 의해서 실현되고 보장된 인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인권과 기본권은 같지 않다. 기본권이 사라져도 인권은 존재할 수 있고, 기본권이 변경되어도 인권은 영속하다. 인권과 기본권은 같지 않지만, 현실에서 헌법은 기본권을 통해 인권의 모습을 드러낸다.
2. 인권 vs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어제 인권 얘기를 하니까, 어떤 분이 와서, 이러신다. “비주택 거주자들의 인권도 좀 거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ㅋㅋ 내가 거론한다고 해서, 나아진다면야 거론안해드릴 이유도 없지만, 도대체 내가 뭐길래, 나에게 그 거론을 기대하시는지는 모르겠다. 세상 모든 부조리한 일들과 모든 바람직한 일들을 내가 다 챙길순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이 분이 말씀하시는 “비주택거주자”가 뭘 의미하는 지 모르겠지만, 난 일단 “노숙자”들이 떠오르는데, “노숙자들의 인권”이라.. 당연히 노숙자라고 인권이 부정당해서는 안되는 것이 마땅하고, 노숙자가 다른 사람에 비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한데, 사실, 이 분 말씀의 의도는 단지 그것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의심이 든다.
일단, 이분은 혹시 인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혼동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많은 분들이 이 둘을 혼동한다. 이 둘이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겠다. 그러나 이 둘은 사실 좀 많이 다르다. 태생부터 다르고, 현재의 모양도 다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인권과는 구별되는 기본권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사회적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헌법 재판소는 이를 “국민소득, 국가의 재정능력과 정책 등을 고려하여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으로 모든 국민이 물질적인 최저생활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행위의 지침”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기본권은 물론 인권보장의 중요한 토대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인권은 아니다.
3. 구치소 재소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행복추구권”?
2013년도에 한 석방된 재소자가 헌재에 구치소 환경에 대한 위헌확인을 구한 적이 있다. 구치소에서 1인당 면적이 1㎡ 남짓 되는 공간에 불과한데, 우리나라 성인 남성 평균 신장인 174㎝ 전후의 키를 가진 사람이 팔다리를 마음껏 뻗기 어렵고 칼잠을 자야할 정도로 매우 협소하다는 것이다. 만약 비주택거주자의 인권이 문제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위헌을 구한 신청인은 이러한 구치소환경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 인격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했단다. 신청인은 아마도 자기가 아는 권리는 다 가져다 붙인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신청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작년 말 위헌판결이 나긴 했다. 그런 구치소 환경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헌재가 그런 구치소환경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질적인 최저생활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의 지원을 받을 모든 국민의 권리”는 기본권인 것은 맞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박탈해서는 안되는 인권이라고 하긴 어렵다. 구치소 생활자를 대상으로는 제한할 수 있는 권리다. 국가는 그것을 제한하고 싶어서, 재소자를 구치소로 보낸 것이다.
“행복추구권”도 마찬가지다. 구치소생활자들에게 무슨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겠는가? 행복추구권.. 말이 뭔가 있어보여서 여기저기 불려다니는데, 그냥 일반적 자유권을 행복추구권이라고 하는 것이다. 헌법상의 다른 권리로 포섭되지 못하는 자유는 모두 그냥 행복추구권이라고 한다. 행복추구권은 다른 기본권이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충해주는 역할이다. 다른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기본권이 있을 경우 행복추구권은 아예 고려 자체를 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일반적 자유권을 제한하고 싶어서 국가는 재소자를 구치소로 보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 여기저기 엉뚱한 곳에 불려다니며 고생하는 이 두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나 “행복추구권”이 두 독재자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박정희에 의해서, 행복추구권은 전두환에 의해서 헌법 속 기본권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