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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5일 수요일

"사람이길 포기한 괴물"


흉악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빠짐없이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길 포기한 사람"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말은 흉악범에 대한 인권침해를 옹호하는 논리 더나아가 사형제를 옹호하는 논리로도 자주 사용되곤 합니다. 워낙 많이 회자되는 탓에 진부하기까지한 이 말이 흉악범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얘기되는 걸보면, "사람이길 포기한 사람"론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분명 설득력있는 마법의 열쇠인가봅니다.

그런데 반추해봅니다. 사람이 자신이 사람이길 포기할 수 있는가? 더나아가 누군가 타자가 다른사람의 행동을 들어 그 사람의 권리포기여부를 대신 결정하거나 간주할 수 있는가? 포기는 처분권한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권"이라는 관념은 "인간이길 포기했다"는 말 한마디로 모두 기각됩니다.

인권이라는 관념은 인간이 가지는 어떤 권리 중에는 양도하거나 처분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확신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인권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인권을 박탈하는 논리로 "인간임을 포기했다"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더구나, 스스로 포기하지도 않았는데, 타자의 행동을 두고 옆 사람이 분노에 가득차서,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했네" 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권한 하에 있지 않는 것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려는 유아적인 발상이거나 자신만이 옳다는 병리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인간들이 하는 행동 중에서는, 인간이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기대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톺아보자면, 원래 인간이 아닌 동물들은 그런 흉폭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흉폭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동물은 다름 아닌 인간입니다. 따라서 가장 분노를 불어일으키는 것도 사실은 인간입니다.

분노를 일으키는 누군가의 행동이 인간답지 못했다면, 분노하는 방법은 적어도 인간다워야 합니다. 괴물과 맞선다는 명분으로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괴물로 가득차 가는 이 세상을 어느 누군가는 멈춰야 하지 않나 하는 절박함이 듭니다.

"사람이길 포기한 사람"이라는 말을 남용하는 자가 만약 언론이거나 기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야 말로 언론임을 포기한 언론, 기자임을 포기한 기자들이 아닌지 저는 심각히 의심합니다.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으면서도 괴물같은 인간과 맞설수 있는 방법이 우리에게는 반드시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