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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4일 토요일

명예훼손으로 제소를 당함. 에효. 답변서 문장 정리중.



신청인이 귀 위원회에 제출한 분쟁조정신청서와 이미 인터넷에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마치 제가 돌연 반말을 하면서 “당신은 기자로서 부족하다”, “내 생각에 동의하느냐” “ 왜 동의하지 않느냐 기자로서 자질이 떨어진다”고 단정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말을 듣고 신청인이 스스로 그런 느낌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별론으로 하고,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전혀 없습니다. 신청인과 제가 주고 받은 말을 복사해서 저장해둔 것이 있는데, 확인해보실 수 있는 일입니다.

같은 자료를 보시면 아실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 당시 신청인이 작성한 인터넷신문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기사 안에는 출처를 저로 밝힌 채, 제 글을 인용한 부분도 있어서, 그것은 결코 이상하다거나 사회상규에 반하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신청인은 자신의 기사에 대한 저의 이야기를 자신에 대한 것으로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낙인 찍으면 저도 할 말 있고 소송하면 돼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신청인은 “일단 닥치면 생각해요 ㅜㅜ미리 생각부터 생각하는 건 복잡해요” 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인용을 허락하고, 자료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사 안에서 출처로 제시되어 인용당한 제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무책임해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제가 기사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어찌하다보니, 이야기의 초점이 기사가 아니라, 기자의 책임감 내지는 자질 문제 또는 기자론까지 이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자의 자질을 문제 삼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글의 인용을 허락하고, 자료를 제공한 사람이 그 기사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책임감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사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자에게, 자신의 기사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기사에 인용을 허락하고 글을 제공한 사람으로서 부당한 강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두고 “당신은 기자로서 부족하다”, “내 생각에 동의하느냐” “ 왜 동의하지 않느냐 기자로서 자질이 떨어진다”라는 뜻으로 단정한 채 강요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상처 입었다면, 그것은 신청인이 가지는 일종의 열등감에 기인한 착각에 불과하다 하겠습니다. 실제로, 신청인과의 대화를 살펴보면, 인용을 허락하고 자료를 제공한 저의 책임감을 신청인은 여러 차례 “잘난 척”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한편, 해당 기사는 제가 자료를 제공한지 10~20분도 되지 않아 발표되었는데, 비문 투성이인 데다가, 문장이 길고 연결도 매끄럽지 않아서 도저히 기자가 쓴 기사라고 보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장을 다듬어서 보내주었는데, 원래의 기사와 비교해본다면, 앞으로 기사문장을 쓸 때 신청인이 좀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청인은 “훨씬 낫네요. 똘님이 쓰신 글이”라고 말한 후에, 무단으로 자신의 기사에 제 첨삭지도문장을 통째로 사용하였습니다. 설마 기자가 남의 문장을 허락도 없이 통째로 그대로 자기 기사에 사용할 것이라는 것은, 제가 알고 있는 기자들의 직업적 자존심에 비추어 볼 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신청인은 이를 두고 제가 "동의 없이 편집해 문장을 다듬어서 " 보내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러한 호의에 도대체 어떤 동의가 필요한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문장을 다듬어서 보내주었다고 해서, 신청인처럼 무단으로 그것을 자신의 기사에 사용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신청인은 그날 저와의 대화를 단절하고자 페이스북 친구를 차단하였습니다. 그것은 신청인의 권리에 속하는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기사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첨삭지도문이 무단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애써 침묵하면서까지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호의관계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행위는 적반하장격의 몽니임에 다름 아닙니다. 이에 결국 저는 신청인이 제 첨삭지도문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게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글과 제가 신청인의 명예훼손에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쓴 글들을 두고 신청인은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포털사이트에 삭제청구를 하거나, 형사 고소를 하는 한편, 거액의 배상을 요구하며 귀 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http://mad.pe.kr

이계덕 고소건 대응페이지

2015년 1월 22일 목요일

기자의 칼은 펜이어야 한다.



1


계덕이는 나랑 
온라인 상에서 토론하거나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대요.

그런데 내가 계덕이에게
온라인 상에서 토론해달라거나
대화해달라고 강요한 적이 있었나요?

그런데 지금 이계덕은 마치 내가
무엇인가를 강요했던 것처럼 주장하고 있어요.

계덕이는 내가 자신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자기도 나를 언급하지 않는 걸 원한대요.

내가 계덕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을
계덕이가 강요할 순 없는 것 같잖아요?
계덕이가 나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해결하면 되는 거 아녜요?

그밖에도 한번 다들 살펴봐요
페북에서 주고 받은 대화 알죠?? 그걸 보면서 말예요.
내가 과연 계덕이한테 뭔가 강요한 게 있는지 말이죠?

2.

계덕이는 비판이 과도한 범위를 넘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데까지 이르면
그게 비방이 된대요.

비방과 비판을 구별하는
계덕이의 자의적인 기준은 알겠는데요,

계덕이식의 표현 대로 해볼까요?
그 기준에 대한 이계덕의 강요를
왜 우리가 수용해야 되는 거죠?
왜 비판과 비방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기 기준을
우리한테 강요하고 있죠?

3.

계속해서 계덕이 말인데...
'부탁'은 상대방의 거절을 예상하고,
상대방이 거절했더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거래요..

상대방이 거절했을때 기분이 나빠서
"왜 거절하는데, 그래서 너가 안되는거야"라는
식의 반응이 나온다면
그걸 강요라고 한대요.

계덕이는 아마 국어사전을 새로 쓰고 싶은가봐요.

이 지점에서 우리가 따져봐야 할 것은..
도대체 내가 뭘 요청했고,
계덕이가 거절했다는 게 뭘까? 하는 점이에요.
누구든 알고 있는 사람 있으면 알려줄래요?

계덕이의 말인즉,
"왜 거절하는데? 그래서 너가 안되는거야!"
이런 식의 반응을 내가 보였다는 거죠? 내가? 헐..

4.

알아요 알아. 계덕이가 강요당하는 삶을 싫어한다는 거.
계덕이만 싫어하겠어요? 강요당하는 삶? 나도 싫어요.

내가 생각하는 "기자는 이래야 돼" 라는 관점에
계덕이가 맞춰야 한다는 생각도 안해요.

그런데.. 다만,  얘기할 순 있잖아요?

'계덕이는 이러이러한데,
내가 생각하는 기자는 이래야 한다.'
이게 왜  강요에요?
계덕이는 왜 내가 이 말을 못하게 강요하는 거죠?

5.

난 '애정'이라고 하지만
계덕이 자기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자존감의 상처'였대요. 빙고!

내 말 때문에
자존감의 상처 입을 수 있어요.
인정해요.

그런데 자존감의 상처라는게
과연 상대방이 헛소리를 하거나
자신의 기준을 강요할 때
형성될 수 있는 건가요?

자존감의 상처.....
만약 그런 걸 입었다면,

만약 상대방의 기자관이
자신에게 어떤 강요나 상처로 느껴졌다면...
그게 글의 힘이거든요.

그러면, 자신의 기자관을 피력하는
상대방을 문제를 삼을게 아니잖아요?
상대방의 기자관을 담은 글이
왜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지..
그걸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녜요?

내가 계덕이한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6.

계덕이가 내 말에 자신을 맞추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알아요.
난 원하지 않는 계덕이를 지도하겠다는 게 아녜요.

다만, 기사로 공적인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는 한 기자와
그의 기사에 대해
누구든 이 사회에 얘기할 수 있는 거 아녜요?
계덕이는 왜 그걸 못하게 강요하지요?


7.

알아요. 알아.
계덕이는 그동안 이미 악플로 크나큰 고통을 받았어요.
그리고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글들이 온라인에서 판치는 거?
계덕이 뿐만 아니라 누구도 유쾌하게 생각하는 사람 없어요.

정신과 진료? 고통스러울 거에요.
1주일에 두세번 경찰서 왔다갔다 하는거 왜 안 피곤하겠어요?
대형포털을 상대로 소송하는거? 왜 안힘들겠어요?

8.

그런데, 계덕이는 기자로서
공적영역에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삶을 선택했잖아요?

공적영역에서 기자의 삶을 선택한 사람이 자기가 힘드니까
어떤 비판이나 비평도 하지 말라는게 말이 되나요?

계덕이한테 약이냐 독이냐?
이걸 따지기 전에..

계덕이의 기사가 약이냐 독이냐?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정확한 정보의 전달과 올바른 의제설정을 위해
어떤 최선을 다했나?
그걸 당연히 누구든 따질 수 있는거 아냐?

그 점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게 고통스러우면
기자 하지 말아야지요.

9.

계덕이는 이렇게 말했어요.
"인격권침해에 해당할정도로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그 강요에 따르지 않았다 해서 보복심리로
이런식의 비방글을 이곳 저곳 커뮤니티마다 게시한 것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물을" 거래요.

이 말 자체가 나에 대한 명예훼손 아닌가요?

내가 자기한테 강요했고,
자신이 그 강요에 대해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보복심리로 내가 비방글을 썼다?

그렇게 주장하려면,
과연 강요의 내용이 뭔지 부터 나와야 하는 거 아녜요?

내가 강요한게 과연 뭘까요?
계덕이가 따르지 않은 게 뭘까요?

지금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고 있는 사람이 누굴까요?
나일까요? 계덕이일까요?

비평이나 비판을 하되,
자신만은 제발 언급하지 말아 달라는 계덕이의 강요.

강요에 직면하고 있는 사람은 지금 나고! 
그걸 거절하든 말든.. 그건 내 영역이라고요.


10.

지금 계덕이는 말장난으로 누군가를 고소하고..
누군가를 모함할 수 있다고 믿는가본데..
기자는 그렇게 말장난 잘한다고
할 수 있는거 아니거든요?

11.

아! 그리고 난 자폐적 환자라는 말을 한적도 없어요.
정확한 표현은 "자폐적 자기맹신에 의한 확증편향"이었을 거에요.
"확증편향 환자"라는 말을 한적은 있는데..
그런 병은 존재하지도 않고..
확증편향이야.. 그거야 뭐 계덕이 뿐만 아니라
매우 많은 사람들의 흔한 문제고요.
그런데 기자에겐 확증편향.
그거 굉장히 큰 장애에요.


12.

아마 지금부터 하는 말도 계덕이는 인정하지 않을 거에요.
자신의 기자관은 다르다고 할테니까..

그러나 내 기자관을
한번 더 얘기해줄게요.
강요하는 거 아녜요.
받아들이든 말든 그건 당사자들 몫이니까..

그냥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자의 칼은 펜이어야 한다.
법을 칼로 쓰는 이가 기자일 순 없다.

물론 물리적 폭력 앞에서
법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을 때도 있을 수 있다.
기자도 기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니까..

그러나 기자가
폭력과 침해에 대처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보통 사람과 달라야 한다.

만약 남의 글이,
남의 말이 칼처럼 느껴졌다면,
어줍잖은 법으로 방패삼아서는 안된다.
그 방패 또한 글이어야 한다.

그게 기자다.

왜냐하면 기자는
법을 방패와 보호막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법의 폭력성을 직시해야 하는
비판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기자관은 나의 것에 불과하니까.
법을 칼로 쓸지 말지 그건 계덕이 몫이에요.

내가 볼 땐 기자가
사사건건 고소 운운하는 건..좀 쪽팔린 일인데..
계덕이 생각은 다를 수도 있죠 뭐.


http://mad.pe.kr

이계덕의 고소건 대응 페이지

신문고 이계덕 기자가 저를 고소했다고 하네요.




신문고 이계덕 기자가 저를 고소했다고 하네요.
무려 다섯가지 혐의입니다.
명예훼손, 모욕죄, 사이버스토킹, 강요, 공갈죄. 헐.



이계덕 기자에 의하면,
제가 인격권 침해에 해당할 정도로 자신에게 강요하고,
그 강요에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보복심리로
지속적으로 비방글을 게시했다는 것인데요.

도대체 이계덕기자가 따르지 않았다던
저의 강요의 내용이 뭔지, 저는 그것부터 모르겠습니다.
강요를 했다니까, 제가 이계덕에게 강요한 내용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게 뭘까요?

전 이계덕과 한번도 만난적이 없고,
이계덕과의 소통은 거의 모두 온라인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이계덕과의 모든 소통의 흔적은
거의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계덕이 적반하장격으로 하도 방방 뛰길래,
오해나 이계덕에게 어떤 억울함도 없게 하기 위해서
그 모든 소통 기록들을 블로그에 공개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계덕은 그 기록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포털사이트에 삭제 신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임시조치가 내려진 상황입니다.

구글블로그에서는
우리나라 포털과 달리,
피해를 주장하는 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임시조치를 내리지 않습니다. 


아래의 링크를 따라가시면
여러분들도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판단해주시죠.
제가 이계덕에게 뭘 강요를 했는지?
그게 뭘까요? 여러분들은 혹시 아시나요?

http://19dominic74.blogspot.kr/2015/01/blog-post_99.html

<= 공개적으로 이뤄진 댓글대화내용을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담고 있는 글입니다.

http://19dominic74.blogspot.kr/2015/01/blog-post_20.html

<= 전말의 사정을
저의 1인칭 시점으로 
설명한 글이 이 글입니다.

http://19dominic74.blogspot.kr/2015/01/blog-post_22.html

<= "문제가 된 이계덕의 속옷사진. 과연 어떤 것이었나? "
라는 제목의 글인데,
이 글 역시 다른 글들과 함께
권리침해신고를 당해 임시조치가 취해졌습니다.

이 글들에 대해서
명예훼손의 혐의가 가당키나 한지..

후아. 제 첨삭지도문장을 무단으로
자기 기사 대신 끼워넣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입니다.

지금 명예훼손의 혐의가 과연 누구를 향해야 할지
이계덕기자는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
불쌍한 친구..
    

문제가 된 이계덕의 속옷사진. 과연 어떤 것이었나?




이계덕의 속옷노출 . 보통의 속옷도 아니었다. 생식기만을 감싸는 주머니와 줄로 된 팬티를 생각해보라. 그걸 이계덕이 직접 입고 찍은 사진들.. 누가봐도 민망하고 낯 뜨거운 사진들이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심지어 반드시 가려야 할 부분을 가리지 못해 스스로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도 있었다. 단지 속옷 사진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페북에서만 공개하고, 관련 기사에서는 한 컷 올리지도 못한 이계덕.

음란이란 인간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전체적으로 보아 하등의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우리 법원의 견해다. 이러한 법원의 해석으로 음란물의 판단은 자의성을 배제한채 명확성의 원칙을 확보했다. 또한 이러한 법원의 해석에 비추어보아, 이계덕의 사진들은 음란물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자의적이지 않은 판단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했다.

우선 음란물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하자. 나 역시 그러한 민망한 음란물에 대해서 권장할 수는 없을 지언정, 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주장은 주장일 뿐.  매우 슬프게도 법과 법원은 그와 같은 나의 주장에 기속되지 않는다. 법관은 오로지 법에 법에 대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재판할 뿐이다.

그래서 물어봤다. 그 속옷입은 사진을 통해 전하고 싶은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사상적, 의학적, 교육적 메시지가 있었나? 그런데, 이계덕은 그것이 그냥 이뻐서 올린 거란다.  속옷이 이뻐서 속옷을 입은 자기 깊은 속살까지 같이 공개했다는 것이다. 그냥 이뻐서 올렸기 때문에, 어떤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계덕의 주장이다.

이계덕의 말대로라면, 어떤 음란물을 올리더라도, 올린 사람이 "이뻐서 올렸다"고 주장하면 법원이 문제 삼지 않아야 할 판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음란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처럼 견해를 같이 하지 않는 법도 있게 마련. 그러한 법이라고 해서 복종하지 않고 무시해도 좋다는 논리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기자가 그러한 안일한 자기 중심적 태도로 법을 바라보고,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기 이를데 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사를 쓰기 전 이러한 정보를 담은 포스트를 소개해주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이계덕은 자신의 기사에서 여전히 규정의 모호함과 자의성 타령이다. 자신의 기사를 통해 음란물 규제와 페북의 조치에서 문제되는 것은 규정의 모호함과 자의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음란물 규제에 있어서 명확성의 원칙에 대한 논란은 이미 끝났다. 페북의 정책도 우리 법원에서 확립된 기준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적용의 과정에서 일관성을 갖추지 못한 점은 보이는데, 그것은 어느 집단의 법적용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계덕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오류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기사부터 질러놓고 닥치면 생각하잰다. 미리부터 생각하는건 복잡하단다.
   

2015년 1월 21일 수요일

과연 이계덕에게 나는 어떤 강요를 했나?




이계덕군이 내 주장에 대해 억울해 하는 면이 많은 것 같아서..
오해나 이계덕군의 억울함이 없도록..
저와 이계덕군의 거의 모든 대화가 그대로 담긴 내용을
아래와 같이 공개했는데요.

방금 네이버와 다음에서
그 포스트가 차단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계덕군이 권리 침해 신고를 한 모양이네요.
이계덕군 페북에서 공개적으로 주고 받은 대화였습니다
도대체 이 글의 무엇이 어떤 부분이 이계덕군의 권리를 침해했을까요?



똘 :  모든 행동이 기사가 되는 건 좋은데, 기사가 갖추어야 할 기본은 잊지 말아야 좋은 기자겠지요?

똘 : ... (첨삭지도 전문) .....

똘 :  내가 좀 첨삭을 해봤는데, 읽어보고 한번 비교해보도록 해요.

계 :  훨씬 낫네요. 똘님이 쓰신글이



그리고 이계덕은 내 첨삭지도글을 몽땅 자기 기사를 대신해 끼워 넣었다. 내 허락도 없이.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꾹 참고 다른 부분을 물었다.


똘 : 이계덕기자님에게 질문이 있어요. http://bl0g.kr/43 기자님의 속옷노출은 어떤 인문학적 의미나 가치를 가지고 있나요? 속옷노출을 통해 전하고 싶은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사상적, 의학적, 교육적 메시지가 있었나요?

계 : 그냥 이뻐서요' 속옷이.  '이쁜걸' '이쁘다고' 말하는것에 대해 굳이 인문학적 가치, 정치적 사상적 의학적 교육적 메시지를 포함해야 하나요?

똘 : 나도 이계덕기자님과 같은 견해인데, 법원의 견해는 달라요. 그러니까 답변을 생각해놓으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계 : 이계덕 속옷패션도 디자이너가 엄연히 존재하고, 그 패션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패션인데, 미학적인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이는데요?

똘 : 잘못해서 법원에 의해 인간존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인 표현일뿐 아무 인문학적 가치가 없는 표현이라고 규정지어질 경우 형사처벌가능성을 배제할수 없으니까요

똘 : 그러한 미학적가치가 있다고 주장하셔서 법원이나 검열자들에게 항변하셔야 되는 상황이 오지 않길 진심으로 소망할게요

계 : 속옷 사진으로 처벌되는 시절은 이미 10여년전에 지났자나요

똘 : 그런데 법원의 기준은 성기노출이냐 속옷노출이냐 이 점이 아니라, 그 노출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거에요. 그리고 기자님의 속옷노출은 오로지 속옷노출을 위한 노출이라고 오해받거나 낙인찍힐 위험성이 다분하죠.

계 : 이계덕 낙인찍으면 저도 할말 있고 소송하면 돼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일

똘 : 이계덕 기자님 말씀입니다. "문화나 예술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는지 여부. 이걸 누가 판단할 것인가? 누가 그럴 자격과 권한이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커뮤니티 운영자는 물론 법원까지도 뾰족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 법원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미 준비해놨습니다. 법은 진실의 발견과 사실의 확정에 대한 전권을 법관에게 허락하였거든요. 사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법관이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보기로 법률은 이미 허락한 거에요. 특히 법관은 어떤 표현물에 대한 음란성여부를 판단할 때, 행위자의 진술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행위의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하여 일반인이라면 당해 행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표현자의 그 심리상태를 추인하도록 되어 있어요. 법원에서 낙인 찍을 경우, 이계덕 기자님은 자신도 할 말이 있고 소송을 하면 된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는데, 법원의 판결은 소송의 대상도 아닙니다. 법관은 논쟁의 상대방이 아니라, 설득의 상대방이 되어야 해요. 법관을 설득해서 이해시키지 못하면, 소송에서 지는 겁니다. 물론 기자님 말씀처럼 기자님 일은 기자님이 알아서 할 일 맞는데.. 그 전에 기자님이 뭔가 오해하고 계신 점이 있지 않나 싶어서 말씀드렸습니다.

계 :  일단 닥치면 생각해요ㅠㅠ 미리부터 생각하는건 복잡해요

똘 : 미리부터 생각하면 복잡하니까 닥치면 생각한다? 기자답지 않은 자세에요.^^

계 : '기자답지 않은 기자'이고 싶어요 저는~! 항상.ㅋ 자유주의자

똘 : 기자가 지향하는 기자답지 않은 기자가 뭔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기레기는 되지 말아야겠죠? 자기 기사에 책임감을 가지지 않는 기자는 기레기일뿐 자유주의자와 아무 관계가 없어요. 생각없음. <= 그것이 죄라고 한나아렌트는 말했어요

계 : 제 기사에 책임은 항상 져왔는데?

계 :  '틀'에 얽매이지 않는기자, 겉모습에 치중하지 않는 기자, 이론에 치중하지 않는 기자, 세상에 보도하는 사실을 그대로만 바라보지 않고 한번쯤 비틀어 의문을 제기해보는 기자,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는 기자,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에서 한번더 생각하는 기자, 내 나이또래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기자, 뭐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똘 : 나한테 답변하실 필요는 없어요. 여기서 주고받은 대화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답변해주세요. 그 후에 기자님 스스로 자신이 자신의 기사에 책임진다고 생각한다면. 그럼 된거에요

계 : '기자다움'이라는게 딱히 정해진게 없잖아요. 최소한 나는 다른 사람들이 '기자는 이래야지'라는 타인의 시각에 저를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쓴 기사가 옳고 내가 쓴 기사에 내가 책임을 지면 끝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최소한 남들이랑 똑같은 기자가 될 바에는 남들이랑 다른 기자, 아니 기자가 아니라면 그냥 이계덕으로 살고 싶네요

똘 : 적어도 기자다운 기자는 "생각하면 복잡하니까 나중에 닥치면 생각하자"는 말은 하기 어려울것 같은데... 게다가 기사는 이미 나간 상황에서. 그건 도피에요


계 : 전 공부도 더 해야하고, 기본소양도 많이 부족해요. 그래서 남들같은 기자가 될래야 될수가 없어요. 그냥 내가 잘하는것, 내가 필요로 하는것, 누군가는 관심없어도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소식을 전하는 것, 그리고 내 기사를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할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것이에요

계 : 지금 막 닥쳐있는 상황도 컨트롤하기 어려운 판국에 나중에 있는 일까지 지금 미리 생각하라? 그건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재판만 54개에요. 현재 하고 있는걸 나중에 미뤄가면서 굳이 미리 생각해둘 이유가 없잖아요. 그리고 난 님처럼 '학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류의 소양은 없거든요.

계 : 그냥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올인해왔기에 앞으로도 그럴것이니까 님의 방식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도피'라고까치 표현하는것은 뭐랄까 '지식의 우월'하다는 자랑으로 밖에 들리지 않아서 그닥 탐탁치 않네요

계 : 그리고 난 님처럼 어떤 철학적인 메시지로 머리를 복잡하게 하려고 올린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생각했거든요. "팬티가 이쁘다" "입어보고 싶다" "내가 입은 것에 대해 다름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쁜 팬티를 입은 남자연예인이나 여자연예인이 멋있다" "노출은 누군가에게 허용되고 누군가에게는 금지된 것이 아니라 누구나에게 허용된 표현의 자유다" 이거에요.


그리고 얼마후 이계덕은 새 포스트를 올렸다.

똑똑한척 하고 싶은 사람들은 똑똑한척 하는 사람들끼리 놀아라. 내 스스로 모자란거 뻔히 아는데 똑똑한사람들이 '넌 모자라' '넌 모자라' 이럴수록 기분만 더 나빠진다. 그냥 세상사에 대해서 슬플때 함께 울어주고, 기쁠때 함께 웃어주는 정도,

퇴근 후 나 역시 새 포스트를 올렸다.


이계덕군이 옳다고 믿는 것에 올인하는 거? 좋아요.
그런데, 그 옳다고 믿게 될 때까지의 과정은
완전 무시하는게 이계덕군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계덕 군이 옳다고 믿는 순간
이계덕군의 맘 속에서는 이미 게임 끝인 거에요.
이계덕군은 그 이후부터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해
의심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것은 기자로서 매우 심각한 장애에요.

공부가 부족한 거. 기본 소양이 부족한 거,
문장력이 개판이라서 페친 독자가 챙겨준 첨삭지도문를 그대로 올리는 거.
내가 볼 땐 다 괜찮아요. 차차 나아지겠죠.

그런데, 자신이 옳다고 “믿어서 기사로 쓴” 것에 대해서
전혀 의심을 품지 않거나,
독자 앞에서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고 닥치면 생각할 거고.
미리부터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처럼
무책임한 일이 어디있어요?

단지 이계덕군의 “방식”이 나와 달라서 “도피”라고 표현한 게 아니에요.
그걸 두고 “'지식의 우월'하다는 자랑”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지금 이계덕군 사고 방식에서는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건방진 거죠.

이계덕 군이 다른 기자들과는 “다른” 방식을 지향한다고 해도,
적어도 사람들은 “기자”라는 타이틀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하죠.
그 기대를 염두해두면서 이계덕 군도
“기자”라는 타이틀을 사용할 거고 말이죠.

'틀'에 얽매이지 않는 기자?
겉모습에 치중하지 않는 기자?
이론에 치중하지 않는 기자?
세상에 보도하는 사실을 그대로만 바라보지 않고
한번쯤 비틀어 의문을 제기해보는 기자?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는 기자?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하는 기자?
내 나이또래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기자?
누군가는 관심없어도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소식을 전하는 거?
그리고 계덕군의 기사를 원하는 독자를 위해서 일하는 거?

다 좋아요. 그런데 그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것들은 가득찬 가슴과 의지만 가지고 가능할 것 같죠?
자신의 철학 없이 어떻게 한번쯤 비틀어 의문을 제기하죠?
절실한 소식을 잘 전하려면, 많은
독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기자여야 하고..
기사에 대한 독자의 신뢰감은
기자의 뜨거운 가슴만으로 나오지 않아요.

기자로서 공부가 부족하거나
기본 소양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는데..
일반인의 기준으로 봐도 무식한 건..
좀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적어도 독자보다 무식하진 말아야 하잖아요?
독자들보다는 많은 책을 읽고
독자들보다는 많이 알아야 하잖아요?

분노해야할때 함께 분노하고,
싸워야할때 함께 싸워주고 싶으면
활동가나 정치인이 되어야지.
그게 기자가 할 일인가요?

똑똑하건 무식하건 정치인은 누구나 할수 있어요.
그런데 기자는 아니라고요.
기자가 똑똑한 척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무식해서는 참 곤란하다고요.
게다가 무식하면서
자기 생각은 어떠니 저러니
이런 말까지 기사에서 하고 있어봐요.
그게 무슨 힘이 있겠나?
똑똑한 척 하고 싶은 사람들은
똑똑한 척 하는 사람들끼리 놀라고요?
똑똑한 척하는게 아니라..
보통 사람 수준의 교양은 요구할 수 있잖아요?
적어도 기자한테는.. 안그래요?

얼마전에 어떤 메이저 신문사에서
상반기 공채가 있었는데요..
자격 조건이 이래요.
“병신이 아니거나 자신이 병신인지 알아야 한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요.

홍세화 선생이 10년 전엔가
“너희들은 무식한 대학생”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대학생에게도 무식은 자랑이 아닐진대
기자에게는 무식이 자랑이 아니라는 말은
더 말할 이유가 있나요?

이하 이 글에 대한 답글들..


계 : 잘난틀에서 바라보는 세상과 무식한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를수' 있는 법. 서울대 나와 공부만 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밑바닥에서 경험을 가진 사람은 다른법이죠. 그래도 전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못해본 '경험'이라는 것이 제 기사를 받쳐주네요. 공부는 해야겠죠. 소양도 갖춰야겠죠. 그런데 그런 지적질은 똑같은 사람들한테나 가서 하세요.

똘 :  다른 사람들이 못해본 '경험'이라는 것을 믿은 나머지, 자신의 생각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 거.... 그거는 노인네들이나 가진 태도인데..

계 : 제 기사가 완벽하지 않죠. 저보다 더 나은 기사를 쓰는 분들이 많구요. 최소한 저는 남들이 쓰지 않는 기사를 가끔씩 쓰고, 남들이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현장의 기사를 쓰기도 하죠. 물론 남들보다 못한 기사를 쓰기도 하구요. 저는 모든 '당사자'가 기자를 하고, 모든 '당사자'가 정치를 하고, 모든 '당사자'가 연대해야 진짜 진실이 열린다는 생각이거든요. 저는 성소수자로써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리고 왕따 경험자로써 학교폭력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전과자로써 전과에 대한 차별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그리고 이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마녀사냥을 당해본 이로써 마녀사냥을 당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세상에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목소리를 보도하기 위해 기사를 쓰고 취재를 합니다.

계 :  그 의심을 굳이 똘레랑스님께서 하실 이유도 없죠^^ 이렇게 반복적으로 남의 '기자관'을 건드리실 필요도 없는거 같구요.

똘  :  난 할 필요가 없지만, 이계덕 군 스스로는 해야죠. 자신의 생각에 대한 의심.. 피해자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기사를 쓴다.. 그게 과연 경쟁력일지 장애일지는 연구해봐야겠네요.. 나도 고민을 안해봐서..

계 :  그걸 해야 된다며 강요할 권리도 님에게 없고, 그 의심이라는걸 본인 스스로부터 하셨으면 좋겠네요. 님이 하고 있는 이런식이 단지 '그냥 내가 똑똑한걸 자랑하고 싶어했던것은 아닌가' 하고요.

똘 :  의심해봤고,, 아니라는 결론을 일찌감치 냈어요..난 남들한테 자랑할만큼 똑똑하지도 못하고..

계 :  전 기자로써 최고의 기자가 되려고 기자를 하는게 아니라, 대부분의 기자들이 하지 못하는걸.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절박한 이야기를 가장 공감할수 있는 신분에서 공감해주는 사람이 되려고 기자를 하는것이고, 항상 이야기했지만 언제라도 '로또'를 당첨되면 기자 그만둘거라고 수차례 말했어요. 나는 님들이 기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내가 기자를 하는것은 '당사자'로써 그리고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누군가'를 지지해주는 사람으로써 함께 분노하고, 함께 싸워주는 사람으로써 '미디어'를 통한 투쟁을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항상 현자에서 소개할때도 '직업'은 기자이지만 그것은 직업일뿐 실제로는 '활동가'의 마음을 가진 개인이라고 소개합니다.

똘 :  기자로써 X 기자로서 O

똘 :  지금 활동가의 삶을 살지 않고 기자의 삶을 사는 건 돈 때문이라는 말씀인가요?

계 :  맞춤법 자주 틀려요. 아니라는 결론을 일찌감치 내셨다는데 결국에는 '잘난척' 이시네요.

계 : '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고, 미디어를 통해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는 것. 그리고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언론을 통해 알리는 것. 앞서 이야기했던 그런 것들을 위해 기자를 한다고 말했습니다만?

똘 :  그런데 로또당첨되면 왜 기자를 그만두죠?

계 :  로또 당첨되면 기자 그만두고, 언론사 만들건데요?

똘 :  아.. 그런 뜻이었구나.. 꼭 당첨되었으면 좋겠네요. 기자로서의 자질은 별로지만 언론사사주로서의 자질은 기대할게요..

계 : 님이 생각하는 기자다움은 종이신문에서 찾으세요. 저는 제 스타일을 좋아해주고, 제 글을 좋아해주는 독자층이면 충분하니까요. 전 '내 스타일'의 기사에 대해 남한테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기자로써의 자질' 이라는 것 자체가 무슨 법조인의 '리갈마인드'처럼 무언가 정답이 있는것처럼 말하네요

똘 :  기자. 누구나 할 순 있지만, 아무나 할 순 없죠.. 뜨거운 가슴 중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녜요..

계 :  공감할줄 모르고 잘난척하는 기자가 어떻게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이 되어볼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기자는 '사연' 있는 기자들입니다. 이론으로만 '공부'한 기자들은 절대로 못하는....약자가 되어본 사람, 소수자가 되어본 사람, 해고를 당해본 사람, 가족을 잃어본 사람. 자영업을 통해 물건을 팔아본 사람. 그런 사람들이 가장 진솔하고 사연있는 이야기들을 할수 있지 않을까요?

똘 :  공감하고 겸손하고 진솔한 기자가 되기 위해서 굳이 무식해질 필요는 없어요. 약자의 경험 도움이 되겠지만, 장애가 될 수도 있죠.

계 : 얼마전 '홍가혜' 관련 님께서 쓰신 글을 보면서 "이건 홍가혜씨의 사건에 대해 취재한것이 아니라, 그냥 홍가혜씨에 대한 기본적인 편견을 바탕에 깔고 '여성은 이래야 해'라는 본인의 잘난척을 바탕으로 글을 쓰셨구나라는 생각이 물씬 풍겼어요. 스스로 진솔하다고 생가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공감하고 겸손한 기자는 아니신거 같네요. 잘난척하는 기자지..

똘 :  미안하지만 난 기자가 아녜요. 블로거일 뿐이지.. 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쓸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계 :  저도 저 나름대로 쓸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님이 원하는 기자상에 못미치고, 님이 생각할때 기자로써의 자질이 별로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내가 기자로써 쓴 기사들이 남들이 쓴 기사보다 가치가 없거나 무시당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똘 :  당신이 기자로서 쓴 기사들이 남들이 쓴 기사보다 가치가 없거나 무시당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기자라고 그러고 다니면서 기사 쓰겠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독자들한테 돈도 달라고 할 수 있을 테고.. 당신의 소망 잘 알고 있고. 그 소망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진심이에요..

계 :  제가 계속된 '잘난척'을 들어드리는데 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는것 같아서요. 앞으로 제 페이스북에서 '사담'만 부탁드립니다.

똘 :  원하시는대로 해드리고 싶은데.. 그러면 원하시는 내용을 정확히 제가 알아야 하겠죠? 사담은 무엇이고, 사담과 구별되는 계덕군이 좋아하지 않는 발언은 무엇일까요? 그 변별포인트를 정확히 알려주시면, 적어도 계덕군 폐북에서 계덕군이 싫어하는 말은 안하도록 노력하죠.

계 :  '기자의 자질'이 어떻냐는둥, 기사가 어떻냐는 둥 이런 식의 '지적질'을 받는것에 대해서 "그럼 당신이 더 좋은 기사 쓰던가"라는 말로 답변해왔듯이...저보다 좋은 기사를 쓰는 분들은 많을것이고, 저보다 좋은 기사를 써주신다면 그 만큼 정보가 다양화되고, 그것을 보는 눈의 다름도 확실히 알려지겠죠.

계 : 노래하면 같이 노래 부르고, 사진찍으면 잘생겼는지 옷은 이쁜지 패션은 이쁜지 이야기해주고, 그냥 웃을땐 웃고 울고 싶을땐 울고, 분노할땐 분노하고, 싸울땐 같이 싸우고, 응원할땐 응원하고, 힘들땐 힘들다고 하소연하고...감정표현정도면 충분할거 같은데요?

똘 :  적어도 페북을 통해서 기사첨삭지도도 해주고, 인용할 내 포스트까지 소개해줘서 기사거리까지 만들게 했는데 . 페북을 통해서 기사에 대해 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죠?

계 :  솔직히 말하면 '기사첨삭지도'라는거 자체도 기분 나빠요. 난 너보다 훨씬 뛰어나다라는걸 자랑하는 것도 안했는데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런걸 하고, 더 나아가 계속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식으로 묻는것만큼 폭력이 없죠

똘 :  그러게요, 기분 무지 나쁘셨는데. 자기 기사를 대체해서 그걸 통쨰로 채워넣으셨죠? 원치도 않으셨는데..

계 : 님이 수정한 부분들이 문맥상 깔끔하니까요.

계 : '타인의 삶과 생각, 타인의 지식의 고하를 불문하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 다양성의 원칙인데, 내가 님한테 기사첨삭지도를 원했나요? 기사에대한 평가는 해당 기사에 '댓글'로 남기시면 되는것이지요.

똘 :  그럼 된 거 아녜요? 모두가 만족했잖아요? 그리고 첨삭지도채널을 어디로 선택하든, 그게 문제인가요?

계 :  그리고 물론 그걸로 제 부족함을 다시 확인했고, 무엇이 문제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겠죠. 그건 맞죠. 그런데 그럼 거기서 그냥 감사하다고 끝냈겠죠. 그런데 이건 원치도 않은 '스스' 만난 기분?

똘 :  '스스'가 뭐죠?

계 :  첨삭지도를 왜 꼭 님이 해야하죠?

똘 : 꼭 내가 할 필요 없었어요. 다만 난 계덕군한테 기본적으로 애정이 있었고 , 또 내 포스트가 인용된 기사였는데, 읽기에 매우 불편했죠. 그래서 해주었고, 이계덕군이 만족했죠.. 안그런가요?

계 :  "내가 원하는대로 다른 사람이 움직여주야해. 다른 사람은 틀렸어 고치고 싶어. 내가하는건 다 다른 사람 잘되라고하는 것이야" 이런 시각들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결국에 타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의 하나죠. '이렇게 하면 좋을거 같은데 어떠세요' 정도로 한번정도의 조언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뒤부터는 무시하는 발언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죠?" "도피하시는건가요?" "기자로써..

똘 :  인간에 대한 무시는 가지고 있지 않아요. 다만 내가 논조가 좀 바뀌었다면, 그건 이계덕군의 이 말 그 후부터였죠. "일단 닥치면 생각해요ㅠㅠ 미리부터 생각하는건 복잡해요" 떄로는 뒤통수를 쳐서 정신차리게 하는 것도 애정의 한 방법일 수 있어요.

계 :  고쳐주신것에 대해 만족한것은 맞아요. 그부분은 저보다 님이 훨씬 나아요. 그런데 그뒤에 보이신 질문이나 태도들은 결국 '난 이계덕이란 인물을 가르쳐야겠어'라는 원하지도, 시키지도 않은 본인의 어떠한 '집착' 때문인지 결과적으로 계속 상대를 무시하고 비하하는 말투들을 들으면서 제가 님 역시 위와 같은 병을 가지신게 아닌가 의심이 될수밖에요

똘 :  아뇨 적어도 자기 기사에 대해서 책임감은 가지고 있을 줄 알았거든요. 설마 "일단 닥치면 생각해요ㅠㅠ 미리부터 생각하는건 복잡해요" 식일 줄 알았겠나요? 그리고요, 기사는 공적영역이에요. 사적 영역이 아니라서, 질문이나 비판이 가능하죠..

계 :  말했죠? 전 현재 54개의 재판을 하고 있다구요. 이것만민사고 개인 형사사건 하나에, 제가 고소한 사건만 600건이 넘어요. 그리고 아침에 수영하고, 저녁에 헬스하면서 일정 소화하고 있어요. 그런데 꼭 그 부분에 대해서 '나중에 제 개인이 생각해야 할걸' 꼭 님이 한 질문에 '제가 답변'을 할 이유가 있나요? 기사는 공적영역이지만 '기자'의 페이스북은 '사적공간'이죠. 이곳에 올리는 모든 게시물이 '다 공적인 글'이라고 착각하시는건 아니죠?

똘 : 기사에 대한 비판을 공적 영역에서 하기엔 내가 이계덕기자에 대한 애정이 깊었나보죠..기사에 대한 비판이나 질문을 다른 공적 영역에서 해주길 바래요? 내 블로그 같은?

계 :  엄밀히 말하면 '맞춤법이 안맞다'거나 '기사의 질이 좀 떨어진다'는 것은 내가 이미 인정하니까 굳이 재차 반복해서 하실 이유는 없구요

똘 : 재차 반복할지 말지는 내 선택이고요..

계 :  기사에 대한 비판이 '기자'에 대한 자질문제로까지 갈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구요

똘 : 기사에 대한 기자의 태도는 중요한 비평의 영역이죠..

계 : 뭐 그동안 '기사에 대한 비판'의 범위를 벗어나 '기자 개인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동안 '소송'으로 답해왔으니까요. 기자의 태도에 대해 '자기 주관'으로만 해석해서 마음대로 쓰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내 입장에서 '나는 이렇게 살래'라고 답한바 있습니다. '애정'이 스토킹이 되는것에 대해 그닥 좋아하지 않아요

똘 :  소송의 대상이 될만한 인신공격은 저 역시 좋아하지 않습니다.

계 :  짝사랑도 싫어하구요. 내가 님의 '기자로써의 자질'에 동의하지 못하고, 니미 나의 '기자로써의 자질'에 동의하지 못하는걸로 끝낼 것을 님께서 미련을 못버리셔서 계속 이러고 있네요.

똘 : "나는 이렇게 살래"는 좋은데.. 문제는 기자가 "난 이렇게 기자질 할래" 하는 건 문제가 다르다니까요..

계 : "난 이렇게 기자질 할래"라는 것을 인정해주시는 다른 기자분들이 많으셔서 "그대로 살래요"

똘 : 계덕님의 자질에 대해 논하지 않을게요. 그 대신 하나만 부탁합시다..계덕님이 당연히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그것들 옳다고 믿는 거로는 부족하잖아요? 적어도 기사쓰기 전에는 한번쯤 의심해봐야 하는거잖아요?

계 : 그냥 서로 '쌩' 까고 삽시다

똘 :  이계덕 기자의 기사가 내 눈에 안보이면 생까드릴게요..

계 :  안보이면이 아니라 '안보시면' 되는거죠

똘 :  일부러 찾아가서는 안봐요.. 누가 신문고 같은 곳을 일부러 찾아가서 보기까지 하겠어요. 트윗이나 페북에서 타임라인에 자꾸 뜨니까 보지..

계 :  기자들은 많고, 기사들도 많이 나옵니다. 안보시면 되는데 왜 굳이 보려고 하실까? 또 한명의 '스토커'가 생기는 것에 대해 그닥 비추천합니다.

계 : 신문고까지 찾아가서 직접 기사를 보는 분들이 매일 1만여명이 넘으시네요. 우리 기사를 리트윗하고, 보내주시는 독자분들이 계시구요. 그리고 고발뉴스에도 별도로 원고료받고 글 송고하고 있구요.

똘 :  훌륭하네요.. 그러니까 찾아오는 독자들에 만족하시고, 내가 다니는 게시판이나 트윗 타임라인에 안보이게 해주시는 건가요?

계 :  님 한명 안보더라도 볼 사람은 봅니다. 우리 기사가 맘에 안들면 한겨레 경향이나 다른 대안언론 기사를 보겠죠. 최소한 나는 내 '기자관'에 대해서 이번만 밝힌게 아니라 4년전 처음 기자로써 직업을 가질때부터 변하없이 이대로 살아왔어요.

계 : 님이 피해다니세요.

똘 :  ㅋㅋㅋ 그냥 기사건 기자건 비평하면 되지.. 무슨 피해다니기까지 해요..

계 :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왜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침범하십니까?

똘 :  내가 이계덕군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침해합디까?

계 : 비평과 잘난척은 구분잘하시길

똘 :  내 비평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입니까?

계 : 나보고 님이 다니는 게시판이나 타임라인에는 보여지지 않게 해달라면서요

똘 :  보이니까 비평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우리가 조중동 기사 비평하는 거랑 똑같아요..

계 :  그 비평이 '홍가혜 기사' 때처럼 '철저한 편견'위주의 1인칭 글쓰기?

똘 :  거기서 스토킹이니.. 보지 않으면 된다느니.. 그런 말이 왜 나오냐고요?

계 : 그것이 비평이지 스토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기사마다 댓글단다거나. 기사마다 맞춤법 올린다다거나

똘 :  하하하하. 공적 영역에 있는 기사가 감수해야 할 몫이죠. 창피한줄은 아나봐요..

계 : 오늘의유머 사이트에 그런 사람이 한명 있어서 '소송'해서 형사벌금 200만원 먹였어요.

계 : 공적 비판의 범위를 벗어나 개인에 대한 과도한 인격권침해

똘 : 난 자존심이 있어서 거기까지는 가지도 못해요. 염려 마요..

똘 :  하긴 이계덕군이 오랫동안 악플러들한테 시달렸었죠.? 겁 먹을만 해요..

계 : 기자는 '공적영역에 있는 자신의 기사에 대한 책임은 지지만, 기사외에 사적부분까지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똘 :  동의해요.. 다만 기사에 대한 기자의 태도는 문제가 좀 다르죠..

계 :  기자의 자질에 관해서는 내 스스로 '기자'가 아닌 '기자'라고 이야기를 한다. 스스로 소양이나 공부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내가 말하는 '기자'는 '당사자'로써의 경험과 공감을 바탕으로한 진실찾기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기자가 되야 하고

계 :  나는 그런 기자가 되는것에 만족합니다

계 :  이 이야기를 몇번해야 될까요? 같은말에 반복일거 같은데

계 : 아무튼 전 이제 님을 차단하겠습니다.

똘 :  혼자서 만족하시는데 이력이 나셨으면 제 어떤 비평도 두려우실 이유가 없으실텐데요?


그리고 이계덕은 페북에서 나를 차단했다.

허락없이 내 첨삭 문장으로
자기 기사를 몽땅 대체해 버린 이계덕의 행위가 당혹스러웠지만,
문제 삼지 않으려고 했던 나다.
교육용으로 제시된 내 첨삭문장을 허락이 없이
기사에 사용한 이계덕 기자의 행위를
문제 삼기로 했다


적어도 독자한테
문장지도 받아야 하는 처지가
기자로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른채

"지적질" 운운하는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애정이렸다.
 

권리침해신고에 따른 임시조치를 당해보신 적이 있나요?



사생활 적시, 인신공격 등 표현으로 인한 권리 침해가 가지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침해에 대해서는 피해자로부터 피해의 소명과 차단의 요청이 있는 경우, 그 침해 여부를 판단을 하기 전에 즉시 피해자를 위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인터넷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내가 오랫동안 주장해오던 바다.

그런데 생업에 바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나의 주장이 실현되고 있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2를 살펴본다.

제44조의2(정보의 삭제요청 등) ①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 침해를 받은 자는 해당 정보를 취급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침해사실을 소명하여 그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이하 "삭제등"이라 한다)를 요청할 수 있다.
  ②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제1항에 따른 해당 정보의 삭제등을 요청받으면 지체 없이 삭제·임시조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즉시 신청인 및 정보게재자에게 알려야 한다. 이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필요한 조치를 한 사실을 해당 게시판에 공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④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제1항에 따른 정보의 삭제요청에도 불구하고 권리의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에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을 임시적으로 차단하는 조치(이하 "임시조치"라 한다)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임시조치의 기간은 30일 이내로 한다.
  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필요한 조치에 관한 내용·절차 등을 미리 약관에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⑥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이 운영·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 유통되는 정보에 대하여 제2항에 따른 필요한 조치를 하면 이로 인한 배상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



이 법률에 따라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사이트들은 권리침해신고에 대해 표준화된 대응을 하는 것 같다. 다음카카오에 따르면, 약관에 따라 임시조치된 게시물에 대해서 30일 이내에 게시자의 재게시신청(복원신청)이 없는 경우 30일이 지난 후에 게시물은 삭제 조치된다고 안내한다.

또한 게시물로 인한 피해를 주장하는 자가 임시조치를 신청한 후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또는 법원 등의 결정 기관에 해당 게시물 또는 게시자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에 대한 결정을 득하여 권리침해신고센터로 해당 결과를 알려주면 30일 이내라도, 결정에 따른 삭제 또는 복원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 피해를 주장하는 자가 권한를 남용하여 신고를 남발하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 또한 최근 네이버와 다음에 게시한 총 여섯 건의 게시물에 대해 임시조치를 당했다. 모두 피해를 주장하는 인터넷 기자 한 사람에 의한 것이었다. 정작 그 인터넷 기자는 비열하게도 임시조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다른 사이트에서 나에 대한 명예훼손을 자행하고 있는 상태라서, 이것은 단순히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만 보기 어렵다. 이 자의 경우, 다른 SNS서비스에 대해서는 음란물 게재를 이유로한 임시조치에 반발하여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해당 조치를 무산시킨 바도 있다.

2015년 1월 20일 화요일

기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이계덕을 통해 생각한다.



19일 오전 페북 타임라인에 눈에 띄는 글이 올라왔다. 이계덕의 것이었다. 얘기인즉, 페북이 자신의 계정을 차단했는데, 페북코리아 본사에 찾아가서 고소하겠다고 으르고 나니 계정이 풀렸다는 얘기였다. 페북코리아 본사까지 찾아갔다고? 대단한 자다. 페북 한국본사가 어디있길래? 역삼동에 있단다. 역삼동이라. 불현듯 12년 그 일이 떠올랐다.
 
그렇다. 12년 전. 네이버에 의해 내 블로그가 차단되었더랬다. 이유도 밝히지 않은채 내 블로그를 통째로 차단한 네이버의 답변은 국가보안법이었다. 현대사학자인 한홍구 교수의 김일성 관련 글을 스크랩한 게 화근이었다. 내 블로그를 차단하게 한 문제의 그 글은 네이버뉴스에서도 서비스되던 것이었다. 그 때, 몇몇 언론사에서 내 블로그 차단소식을 전하는 한편, 나 역시 이계덕처럼 그 본사에 항의방문을 했던 터였다. 그 때 네이버 본사 역시 역삼동에 있었다. 그 때 일로 내 블로그는 한홍구교수의 역사책에 출연함으로써 졸지에 역사적 블로그의 반열에 올랐었지.

내가 12년 전에 겪던 일을, 12년 전의 내 나이랑 비슷한 나이의 후배가 지금 겪고 있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묘한 동지의식이 느껴졌다. 또 페북이 그러면, 페북 본사에서 속옷 시위를 할 거란다. 국가인권위 진정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에 진정할 수 있는 내용이 뭔지 잘 모르는 친구인 것 같았다.


선배 언론학도로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먼저 고민해온 선학으로서 , 몇 가지 팁을 주고 싶었다. 내 블로그에서 음란물 표현의 자유에 관한 포스트 몇 개를 소개했다. 곧 답이 왔다. "좋은 자료"란다. 우라까이해도 되냐고 묻는다. 무슨 우라까이 씩이나. 출처나 밝히면 된다고 했다.

10분 쯤이나 지났을까? 바로 우라까이의 결과물이 올라왔다. 후우 정말 날림 기사다. 읽기 힘들었다. 첫째 문장이 너무 길었고, 연결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둘째, 내 글에 대한 인용에서 본질을 제대로 잡지도 못했다. 내 포스트에서 김경신 교수의 사례를 쓰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 사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서, 굳이 내 포스트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신문기사들이 널려있었다. 무엇보다도 이계덕 기자의 결론을 보니, 내 포스트를 제대로 읽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계덕은 자기가 고소를 하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것처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는 자신만만했다.
    
곧이어, 이계덕은 자신의 페북에서 “생활의 기사화” 운운하며, 자신의 기사에 대해 얘기했다. 생활의 기사화 같은 소리 한다. 신문기사가 무슨 낙서장인가? 생활을 기사화하려면, 좀 제대로 쓰든지..
  
먼저 이계덕의 기사를 복사해서 대충 고쳤다. 고치면서 보니 이 친구가 정녕 4년차 기자 맞을까 싶었다. 지난 달 한 중학생의 습작기사를 첨삭지도해주었던 기억이 났다. 고쳐진 글을 이계덕에게 보냈다. 자기 글과 비교해본다면, 알겠지. 어떤 글이 더 낫고, 자신의 문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부끄러움을 안다면, 이계덕이 발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곧 답이 왔다. 내 글이 훨씬 더 매끄럽다는 것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난 이계덕이 기자의 자존심과 부끄러움을 아는 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다음에 있었다. 이계덕은 한마디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내 첨삭지도문을 통째로 자신의 기사를 대체해 올려놨다. 오오 하느님. 침착해져야 한다. 침착해져야 한다.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이계덕에게 물었다. 몇 가지 우려되거나, 이계덕이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들이었다. 그런데 이계덕은 자신이 쓴 날림 기사의 오류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가 철썩같이 믿고 있는 사실은 오로지 하나였다. 속옷사진으로 처벌하거나 계정이 차단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 이계덕은 오로지 그 점을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고 있는 듯 했다. 내 질문과 염려에 대해 이계덕은 이렇게 답했다.

“낙인찍으면 저도 할말 있고 소송하면 돼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일”

그래! 네가 할 일인 줄 몰라서 이러냐? 기사에서 헛소리나  적어놓지 말든지. 이계덕의 기사는 음란물 제한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 것이었다. 적어도 음란물 정의에 대한 모호성이나 음란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려고 한다면, 검열자들이 어떤 논리를 가지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았어야 한다. 이계덕은 이미 오래전 검열자들에 의해 반박된 주장을 자신의 기사에서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소송은 왜 이렇게 맹신하는지? 법원을 자신의 편이라고 철썩같이 확신하는 이계덕의 근거가 난 무척 궁금했다. 좀더 자세히 설명했다.

이계덕 기자님 말씀입니다. ‘문화나 예술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는지 여부. 이걸 누가 판단할 것인가? 누가 그럴 자격과 권한이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커뮤니티 운영자는 물론 법원까지도 뾰족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 법원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미 준비해놨습니다. 법은 진실의 발견과 사실의 확정에 대한 전권을 법관에게 허락하였거든요. 사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법관이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보기로 법률은 이미 허락한 거에요. 특히 법관은 어떤 표현물에 대한 음란성여부를 판단할 때, 행위자의 진술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행위의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하여 일반인이라면 당해 행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표현자의 그 심리상태를 추인하도록 되어 있어요. 법원에서 낙인 찍을 경우, 이계덕 기자님은 자신도 할 말이 있고 소송을 하면 된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는데, 법원의 판결은 소송의 대상도 아닙니다. 법관은 논쟁의 상대방이 아니라, 설득의 상대방이 되어야 해요. 법관을 설득해서 이해시키지 못하면, 소송에서 지는 겁니다. 물론 기자님 말씀처럼 기자님 일은 기자님이 알아서 할 일 맞는데.. 그 전에 기자님이 뭔가 오해하고 계신 점이 있지 않나 싶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다음 이계덕의 답변은 압권이었다. “ 일단 닥치면 생각해요ㅠㅠ 미리부터 생각하는건 복잡해요” 기사가 나간 후엔 그 기사에 대해 더 고민할 필요가 이계덕에겐 없는 듯했다. 그는 기레기였다.

한편으로 내 질문과 멘트가 좀 불편했는지, 이계덕은 트윗과 페북에서 나를 의식한 쪽글들을 하루종일 쏟아냈다.

“전 공부도 더 해야하고, 기본소양도 많이 부족해요. 그래서 남들같은 기자가 될래야 될수가 없어요. 그냥 내가 잘하는것, 내가 필요로 하는것, 누군가는 관심없어도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소식을 전하는 것, 그리고 내 기사를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할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것이에요”

“지금 막 닥쳐있는 상황도 컨트롤하기 어려운 판국에 나중에 있는 일까지 지금 미리 생각하라? 그건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재판만 54개에요. 현재 하고 있는걸 나중에 미뤄가면서 굳이 미리 생각해둘 이유가 없잖아요. 그리고 난 님처럼 '학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류의 소양은 없거든요.”

“그냥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올인해왔기에 앞으로도 그럴것이니까 님의 방식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도피'라고까치 표현하는것은 뭐랄까 '지식의 우월'하다는 자랑으로 밖에 들리지 않아서 그닥 탐탁치 않네요”

“그리고 난 님처럼 어떤 철학적인 메시지로 머리를 복잡하게 하려고 올린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생각했거든요. "팬티가 이쁘다" "입어보고 싶다" "내가 입은 것에 대해 다름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쁜 팬티를 입은 남자연예인이나 여자연예인이 멋있다" "노출은 누군가에게 허용되고 누군가에게는 금지된 것이 아니라 누구나에게 허용된 표현의 자유다" 이거에요.”

심지어 나를 똑똑한척 잘난척하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글도 보였다.
“똑똑한척 하고 싶은 사람들은 똑똑한척 하는 사람들끼리 놀아라. 내 스스로 모자란거 뻔히 아는데 똑똑한사람들이 '넌 모자라' '넌 모자라' 이럴수록 기분만 더 나빠진다. 그냥 세상사에 대해서 슬플때 함께 울어주고, 기쁠때 함께 웃어주는 정도, ”


지금 쥐뿔도 모르면서 똑똑한 척 잘난척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러지 말라고 이러는 사람을 몰아가는 방식도 기레기다웠다. 그는 비열했다.

이계덕의 말처럼 옳다고 믿는 것에 올인하는 거? 좋다. 그런데, 이계덕의 문제는 그 옳다고 믿게 될 때까지의 과정은 완전 무시한다는 거다. 그래서 이계덕 군이 옳다고 믿는 순간, 이계덕의 맘 속에서는 이미 게임이 끝난 거다. 이계덕은 그 이후부터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해 의심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좋게 말하면 자존심이고 자신감인데, 나쁘게 말하면 기사에 똥 쌀 수밖에 없는 비극이 여기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기자로서 매우 심각한 장애다.

공부가 부족한 거? 기본 소양이 부족한 거? 문장력이 중2수준인거? 그럴 수도 있다. 내가 볼 땐 다 괜찮다. 차차 나아지겠지. 그런데, 자신이 옳다고 “믿어서 기사로 쓴” 것에 대해서 전혀 의심을 품지 않는 건 다르다. 독자 앞에서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고 닥치면 생각할 거고. 미리부터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기자로서 무책임한 일이다.

이계덕이 자신의 말처럼, 다른 기자들과는 “다른” 방식을 지향한다고 해도, 적어도 사람들은 “기자”라는 직함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한다. 그 기대를 염두해두면서 이계덕도 “기자”라는 직함을 사용할 것이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기자? 겉모습에 치중하지 않는 기자? 이론에 치중하지 않는 기자? 세상에 보도하는 사실을 그대로만 바라보지 않고 한번쯤 비틀어 의문을 제기해보는 기자?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는 기자?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하는 기자? 내 나이또래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기자? 누군가는 관심없어도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소식을 전하는 거? 그리고 자신의 기사를 원하는 독자를 위해서 일하는 거?

다 좋다. 그런데, 그걸 하려면, 불타는 가슴과 의지만으로 불가능하다. 자신의 철학과 고민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번쯤 비틀어 의문을 제기하나? 절실한 소식을 잘 전하려면, 많은 독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기자여야 한다. 그리고 기사에 대한 독자의 신뢰감은 기자의 뜨거운 가슴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차가운 머리가 필요한 이유다.

다른 기자들에 비해 공부가 부족하거나 기본 소양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기자가 일반인의 기준으로 봐도 무식한 건, 좀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기자라면, 적어도 독자보다 무식하진 않아야 한다. 적어도 독자들보다는 많은 책을 읽고, 독자들보다는 많이 알아야 한다. 특히 자신이 기사를 통해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분노해야 할때 함께 분노하고, 싸워야할 때 함께 싸워주고 싶으면 활동가나 정치인이 되어야한다. 그건, 기자가 할 일이 아니다. 똑똑하건 무식하건 정치인은 누구나 할수 있다. 그런데 기자는 아니다.

기자가 똑똑한 척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무식해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무식하면서 자기 생각은 어떠니 저러니 이런 말까지 기사에서 하고 있다. 그게 무슨 힘이 있겠나? 똑똑한 척 하고 싶은 사람들은 똑똑한 척 하는 사람들끼리 놀라고? 내가 똑똑한 척하는게 아니다. 똑똑한 척하는 기자에게 보통 사람 수준의 교양을 요구하는 거다. 적어도 기자한테는 그래도 된다.

얼마 전에 어떤 메이저 신문사에서 상반기 공채가 있었다. 자격 조건이 이렇다. “병X신이 아니거나 자신이 병X신인지 알아야 한다.” 홍세화 선생이 10년 전엔가 “너희들은 무식한 대학생”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대학생에게도 무식은 자랑이 아닐진대, 기자에게는 무식이 자랑이 아니라는 말은 더 말할 이유가 있는가?

“무릇 비평이란 반갑게 마련이다. 가령 소설을 냈을 때 비평이 따르는 게 소설가에게 행복이듯이, 칼럼도 마찬가지다. 기자가 쓴 칼럼에 쓴소리는 달게 들어 마땅하다. 새삼 말할 나위 없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한 비평은 우리 사회에 빈곤한 토론의 활성화를 위해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비평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을 때는 전혀 다가오지 않는다. 정반대로 사실을 왜곡해 내놓은 비난과 마주할 때는 무시하는 게 옳다.” 손석춘의 말이다. 그런데 이계덕에게는 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게다.

손석춘의 말처럼 비평을 감사하게 여기기에, 자기 자신에 대한 자폐적 맹신주의에서 비롯한 확증편향은 이계덕에게 너무나 강고하다. 사실에 근거하든 허위에 근거하든, 이계덕에게 비평은 불편하다. 이계덕이 자신에게 애정을 가지고 페북대화를 통해 비평해주려는 페친을 스토커 내지는 잘난척 종자로 몰아붙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에게 내 멘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답변하자니 그것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자기 자신을 견디기 힘들었지. 결국 자기 페북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던 그의 선택은 나에 대한 차단이었다. 하긴 그의 페북은 그의 개인 영역이니까..

그렇게 자폐적 자기 맹신에 빠진 확증편향 환자에게 동지적 연대감을 가지고 공개적인 비평을 자제하고 인내심을 발휘했던 나의 노력은 모두 허공으로 날라가 버렸다. 무엇보다도 무단으로 내 첨삭지도문을 자신의 기사를 대신에 올려놓은 무례함에 침묵하면서까지 연대감을 발휘했던 나에게 그의 졸렬함은 참으로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