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일을 보러 일산서구청에 갔다.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뒤로 험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봐요, 아저씨, 뭐 하러 오셨나요? ” “좀 쉬려고요..” “여기는 쉬는 곳이 아니거든요? 나가세요!”
뒤를 돌아다보니, 현관에서 옷차림이 남루한 아저씨와 경비 아저씨가 실랑이를 벌인다. 한눈에 봐도 옷차림이 남루한 아저씨는 행려자다. 무더운 여름 날씨, 밖에서는 게릴라성 폭우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더위에 습기까지.. 밖은 불쾌지수 “만빵”이다. 어떻게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가지 않으려는 행려자와 경비원의 실랑이를 보니 화가 난다. 오늘도 주책없이 넓은 오지랖을 펼쳐보여야 하는 겐가.
“이보세요.. 아저씨, 이 분이 다른 사람한테 위해를 가했나요? 아니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방해했나요?” 이럴 땐 되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짧게 끊어서 또박또박 빨리 말하는 게 효과적이다. “아저씨가 무슨 권리로 이 아저씨를 나가라 말라 하시는 거죠? 여긴 구청이에요! 구청! 누구든 오갈 수 있고, 쉴 수 있는 곳이라고요.” 이 아저씨 자존심에 잘못을 인정하기 싫은지, 네가 웬 참견이냐는 투다. 좋게 말하면 자존심이지만, 사실은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특유의 벽창호 기질이다. 이런 분들은 주관적으로 의협심이 강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비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니고, 난 저쪽에서 불편해하길래 조치를 취하는 것 뿐이야..” 아저씨가 가르키는 쪽에는 “민원 안내 도우미”라는 데스크 뒤에 웬 아줌마가 우아하게 앉아서 경비아저씨와 나와의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다. 짜증이 밀려온다. 오냐, 날씨도 덥고 이미 불쾌지수까지 높은 상태다. 올치 임자 잘 만났다.
“이 아저씨가 아줌마한테 위해를 가했나요? 아니면 뭐 피해를 준 게 있나요?” “냄새가 나잖아요?” 그 아줌마 입 냄새가 더 심하다. “냄새는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요?” “솔직히 말해보세요, 아줌마는 저런 사람이 아줌마 눈에 보이는 것조차 싫은 거죠? 저런 사람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싫으신 거죠?” 말이 안 통한다. 하긴 때로는 남루한 옷차림을 보는 눈이 냄새의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왠지 싫다.’ ‘때려죽어도 싫다.’ ‘싫은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노.’ 이렇게 나오는 데는 어떤 사실관계를 제시해도 소용이 없고 어떤 논리를 내놓아도 통하지 않는다. “아줌마? 공무원이에요?”“아뇨, 자원봉사자에요.” 대답하는 아줌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당당하기 이를 데 없다. “아줌마, 민원실 관리를 받으세요? 총무과 관리를 받으세요?” “민원실이요!”
“아저씨! 나랑 같이 민원실 올라가요!” 남루한 아저씨의 손을 붙들고 2층 민원실을 찾아 올라갔다. 가는 길에 보니, 이 아저씨 다리를 저신다. 장애인이다. 옷이 지저분하고 남루하긴 했지만, 그 아줌마의 말처럼, 그 아저씨에게서 어떤 불쾌한 냄새를 맡을 순 없었다. 하긴 남의 냄새를 맡기에는 내가 원래 좀 지저분하기도 하다.
민원실에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청량감이 밀려왔다.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이 아저씨, 이렇게 시원한 민원실에는 들어올 엄두조차 못 내고, 시청 현관에서 비와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경비에게 그런 행패를 당한 것이다.
민원실에 들어가자마자 아저씨를 앉혀놓고 담당자를 찾았다. “1층에 자원봉사자 관리 담당하시는 분이 누구요?” 내가 생각해도 나의 목소리는 싸우자는 기세였다. 묻는 기세에 눌렸는지, 창구에 앉아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담당자를 찾느라 전전긍긍이다. 곧 담당자가 나왔다. “이봐요, 내가 1층 입구에서 하도 황당한 경우를 접해서 왔거든요? 이 아저씨가 1층 로비에 서 계셨거든요? 아무에게도 피해도 주지 않고, 위해를 가한 적도 없고, 구걸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만히 서 계시기만 했거든요, 쉬시겠다고?” 역시 스트레스는 받은 장소에서 그때그때 풀어주어야 한다. 스트레스 푸는 데는 뭐니뭐니해도 언성 높여 쏟아 붓는 게 최고다.
“밖에 비도 오고 날씨도 덥고! 당연히 그러실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자원봉사자라는 사람이 이 분이 그냥 옆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경비를 시켜 내쫒는데 그럴 수 있는 건가요? 다른 데도 아니고 구청이 그런 행패를 부린다는 게 말이 되요? 그럼 이 아저씨는 어디 가서 있으라는 거죠?” 내가 한 말이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담당자가 할 말이 없는지 묵묵부답인 채, 내 화를 수그러뜨리려는 듯 전전긍긍이다. “나 이거 정식으로 민원 접수하겠어요! 여기 구민 아니어도, 민원 접수할 수 있는 거죠? ”
담당자가 전전긍긍하며 종이를 하나 내민다. “그럼 이것 좀 작성해주시겠어요?” “직접 작성하세요! 내가 지금까지 구술로 얘기했잖아요? 내가 여기 내 이름하고 주소, 써 놓을 테니까! 내가 내 구술을 바탕으로 작성해주세요! 상황 다 이해하시죠? 제 진술에서 미흡하거나 더 궁금하신 상황 없죠? 나 여기 총무과에 볼일이 있어서 왔으니까, 볼일 볼 동안, 다 써놓으세요!” 원래 민원 접수는 구술로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민원인이 구술로 민원을 접수하겠다고 하면 공무원은 대필해주어야 한다. 그건 당연한 시민의 권리다. 법이 그렇다.
볼 일을 마치고, 민원서류를 확인하러 다시 민원실에 들렀다. 담당자는 내 민원 서류를 아직 대필하고 있다. 한편 다른 공무원 두 명이 그 아저씨에게 매달려 뭔가를 꼬치꼬치 묻고 있다. 사회복지 담당이란다. 한참을 얘기했지만, 그 공무원이 그 “행려자”에게 확인한 것이라고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는 것. “일산2동에 산다”는 것, 두 가지 뿐이었다. 지켜보기 답답했다. 보다 못해 내가 나섰다. “아저씨? 최근에 식사 언제 하셨어요?” 어제 점심 끼니 부터 아무것도 못 드셨단다. 당시 시간은 오후 3시. 무려 네 끼를 못 드신 거다. 공무원에게 물어봤다. “이럴 때, 긴급하게 국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점심 때에 한해서, 무료로 급식해주는 곳이 있단다. “아니 대한민국에서 돈이 없으면, 점심 한 끼만 먹고 살라는 거에요? 뭐예요? 지금 이 양반은 내일 점심 때까지 아무 것도 못 먹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결국 그 공무원은 “계장님”이라는 분께 보고해서 그 분의 식사를 긴급히 해결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저씨는 연신 나에게 고맙다고 하신다. 더 화가 난다. “아저씨, 아저씨 젊었을 때, 세금 안냈어요? 여기에 있는 사람들, 다 그 세금 처 받아먹고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요구할 게 있으면 당당하게 요구하세요! 여기 시원하고 좋은 데, 밖이 덥고 힘드시면 다른데 가지 마시고, 여기 민원실에 와서 앉아계시고요... 아까처럼, 이유 없이 나가라는 이상한 인간들이 있으면 귀싸대기를 때려주세요!” 아뿔사, 이건 아니다. 이런 아저씨가 누군가의 귀싸대기라도 때린다면, 그나마 주장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도 누릴 수 없게 될 텐데... “아저씨, 귀싸대기는 아녜요, 때리지는 마세요..”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 자원 “봉사”를 하신다는 아줌마, 냄새나는 사람, 또는 옷차림이 지저분한 사람
가까이에 있는 게 싫으신 것일 게다. 솔직히, 나도 그런 사람들하고 가까이 있는 거 좋진 않다. 그러나, 바라는 일이 당연한 일일
순 없다. 그런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으면, “자원봉사”운운하며 밖을 나돌아 다니실 일이 아니다. 그 사람들을 피해 다니거나,
길에 나오지 말고 쾌적한 집에 꼭꼭 숨어계실 일이다. 내가 싫다고 해서, 공공장소에서, 보기 싫은 사람, 옆에 두기 싫은 사람들을
폭력으로 밀어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도대체 그 아줌마에게 자원 “봉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아줌마에게 “봉사”란
시각적으로 후각적으로 쾌적한 환경이 전제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나 보다. 사회에 대한 연대감을 적극적으로 갖춘
자원“봉사”자의 존재가 몹시 아쉬워졌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