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23일 월요일

악플러 사법처리에 대해 반대한다


검찰이 지난해 7월 임수경씨의 아들이 필리핀에서 익사했다는 내용의 언론사 인터넷판 기사에 원색적인 욕설을 담은 댓글을 단 누리꾼 25명을 이번 주 초 전원 사법처리하기로 했단다.

사법 처리를 받게 된 누리꾼들은 '김정일이 발가락이나 빨지 그랬어. ×××' '빨갱이×, 아들이 죽어 싸지' 등등의 악의적인 리플들을 해당 기사에 달아놨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욕설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결국 대화를 단절시킨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욕설은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퇴행시키는 앵똘레랑스이며, 네티켓에 어긋나는 행위일 수 있다.


옆에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를 용서하기는 감정적으로 어렵다. 인간의 죽음을 앞에서 놓고서는 애도의 말 외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좋은 풍습이 아니던가? 이 누리꾼의 말은 이러한 최소한의 도를 저버린 극악무도한 행위라 아니 할 수 없다. 아마도 임수경씨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이런 댓글들을 직면하고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으리라.

그러나 오로지 욕설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거나, 욕설 자체에 대해서 사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욕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상대에게 가서 꽂히는 욕. 둘째, 말한 사람에게 돌아와서 말한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도록 하는 욕. 이것이 바로 그 두 가지이다. 이 두 가지가 나뉘게 되는 변별포인트는 욕의 수준과 적절성에 달려 있다.

만약에 욕먹은 사람이 그만큼 욕먹을 짓을 했다면, 그 욕은 욕먹은 사람에게 매우 아프게 꽂히게 된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도 않은데, 이유 없이 욕을 하거나, 대상의 행위보다 훨씬 더 심한 욕을 했다면, 그 욕설은 말한 사람의 인격만 드러내는 데 그치게 된다.

욕설이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와 욕설의 해악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욕설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사법처리에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반항적 혹은 유아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모든 사람들을 거슬리는 입장을 취하거나,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발언,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을 해도 보호를 받는다는 원칙을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모든 주장과 표현이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쓰레기 같은 사람의 표현의 자유도 보장될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여기서 임수경이 당했을, 엄청난 "감정적 고통"과 '표현의 자유'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비판하면 '감정적 고통'을 받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감정적 고통'은 처벌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임수경이 당했을, 엄청난 '감정적 고통'을 위해 일련의 표현에 대해 처벌을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임수경에게 묻는다. 도대체 누리꾼들의 욕설이 임수경에게 "감정적 고통"을 가할 만큼 근거를 갖춘 것이었는가? 그들의 욕설이 "감정적 고통"을 가할 만큼, 그 악플러들이 임수경에게 대단한 사람들이었는가? 누리꾼들로부터 받은 "감정적 고통"을 사법처리라는 칼로 갚아준다고 해서 아들을 잃은 슬픔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난 임수경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남에 의해서만 확인 받아야 하는 사람, 곧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임수경은 많은 이들로부터 동의를 얻지 못해도, 자신을 스스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가슴에 파묻은 임수경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그 고통에서 빨리 헤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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