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 발표된 표창원의 글을 읽고 있는데, 댓글 하나가 눈에 띤다.
“판사들의 판결문중에 제일어이가없는게 죄를뉘우쳐서 감형한다는거.. 지들이 무슨 신도 아니고 죄를뉘우치는지 반성하는지 아니면 겉으로만 감형받을라고 거짓말하는지 어떻게알고 함부로 감형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감. ”
ㅋㅋㅋ 많은 이들이 이 댓글에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판사들. 지들이 신이 아닌거.. 사실은 지들도 잘 안다. 판사들도 불완전한 한 사람의 인간이다. 결코 전지전능할 수 없다. 그건 판사도 알고! 변호사도 알고! 검사도 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피 고인이 진짜로 죄를 뉘우치는지, 반성하는지, 아니면 겉으로면 감형받으려고 거짓말하는지 사실 판사들은 정확히 알 능력이 없다. 또 판사들은 자신이 믿는바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판사들에게는 자신이 믿는 바를 진실로 간주할 수 있는 골때리는 권한이 있다. 진실을 발견하고 사실을 확정할 권한. 권한은 있는데 능력은 없는 거. 이거 골때리는 거다.
재판관의 인간적인 불완전함과 그 판단의 불완전함을 잘 알고 있는 우리 사회가 판사가 믿는 진실을 실체적 진실이라고 간주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존재라는 이유로, 어떤 인간에게도 진실의 발견과 사실의 확정에 대한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이 세상 모든 이가 동의하지 않는한 어떤 판결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재판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보다 사회정의를 위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재판제도와 재판관의 불완전함을 직시하고 욕하면서도, 그 제도에 복종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다 행스러운 것은 재판관의 인간적인 불완전함을 잘 알고 있는 이 사회가 그 불완전함을 완화시켜줄 나름대로의 장치를 여러 가지 두고 있다는 점이다. 심급제도와 탄핵주의 같은 것들은 모두 그런 재판관의 인간적인 불완전함을 완화시키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나름의 제도다.
문제는 판사들이 아니다. 문제는 판사의 판결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있다. 판사가 믿는 진실을 가지고 판결을 받았다 치자. 마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난양 희희락락하거나, 억울해서 죽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거.. 그건 사법제도의 본질을 잘 몰라서 생기는 일이다.
진실? 인간들 사이에서는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거 불가능하다. 사법제도는 불완전한 인간들이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현재까지의 최선일 뿐이다. 죄를 지었다고 믿어지는 사람을 격리하지 않으면, 그 죄로 인해 피해받을 사람을 보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재판제도는 피고인에게 변명할 기회를 줘서 억울한 사람들을 줄여주고, 판사의 믿음과 실체적 진실 사이의 괴리를 줄여주는 데 그나마 가치가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법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사법제도는 누군가를 벌주거나 응징할 목적을 위해서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범죄자의 인권보다 더 소중한 어떤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소한의 제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 사법제도는 누군가를 응징할 목적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믿기 시작하면, 여러 사람 분통 터질 수 밖에 없다. 억울한 피고인은 억울한 피고인대로 분통터지고! 범죄피해자 역시 측도 범죄피해자대로 분통터지게 된다.
누군가를 정당하게 벌주는거? 그거 인간들 사이에서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진실을 밝힐 능력도 없는 인간 주제에 누가 누구를 벌 주는가?
당연히 우리가 좋은 의도로 만들어놓은 사법제도에는 억울한 사법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피해자를 최대한 줄이는 것 뿐이다. 내가 사형제도에 찬성할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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