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7일 토요일

[귀로 듣는 블로그] 아파트는 어떻게 무법천지가 되는가?




1년 전 얘기다. 입대의에 최저임금인상과 관련하여 안건이 올라왔다. 난 의아했다. 아니 최저임금이 올랐으면 임금을 올려줘야지,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의결이라는 말인가?

소장과 얘기했다. "소장님 우리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아저씨들 최저임금만은 제대로 지켜주도록 합시다. 우리 동대표들.. 제대로 해줄 걸 해주면서 상전노릇이나 하면 모르겠는데.. 제대로 해줄 것도 안해주는 거 보면, 내가 아저씨들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소장님이 전문가로서 최저임금이 임의규정이 아니라 강행규정이라는 걸 회의에서 못좀 박아주세요." 소장은 답했다. "그럼요 이사님. 최저임금. 그건 당연히 지켜하는 거지 말입니다."

그러나 회의장 밖에서의 소장과 회의장 안에서의 소장은 다른 사람이었다. 120만원 선에서 맞추라는 회장의 한마디에 소장은 씩씩하고 큰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네! 가능합니다. 휴게시간을 조정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오십대 후반의 소장은 노회한 자였다. 결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전에도 이미 휴게시간을 7시간으로 늘려잡고 있고 있던 터였다. 소장은 경비아저씨들의 휴게시간을 8시간으로 조정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관리사무소 서류 중 2014년 근로계약서를 검사하던 어제의 일이다. 나는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근로계약서 상의 휴게시간이 7시간인 채로, 임금에만 8시간의 휴게시간이 반영되어 있었다.

근로계약서대로 라면, 휴게시간을 제외한 근로시간 17시간 중 1.5배 할증이 적용되는 야간근로시간이 2시간. 총 하루 총 18시간에 대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2014년 최저임금의 90%는 4,689원. 하루 일당 84,402원. 1년 동안 근무일수 182일. 연봉 1540만원, 월급 128만3613원. 근로계약서에 적힌 월급은 이것보다 4만5천원이 적었다. 1년에 최저임금의 54만원을 덜 받는 셈이었다.






그 중의 한 분은 더 심각했다. 그 분은 다른 분들보다 근로계약서 상의 근로시간이 1시간 많았다. 그런데 정작 임금은 다른 분보다 더 낮게 받고 있었다. 이 분의 경우, 열여덟 시간 근무시간 중 1.5배 할증이 적용되는 야간근로시간이 세 시간. 하루 19.5시간에 대한 임금이 지급되어야 했다. 최저임금을 감안하면, 하루 91435원 연봉 1664만1261원. 월급은 1,386,771원이어야 했다. 이분의 근로계약서 상의 월급은 최저임금보다 20만원이상 적었다. 1년 동안 248만원이나 적은 연봉을 받는 셈이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했다. 임금 산출식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관리사무소 경리주임은 근로계약서 상의 휴게시간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처음 안 듯했다. 허둥대는 눈치가 보였다.

퇴근 후, 다른 동대표와 함께 관리사무소에 갔다. 소장의 말인 즉, 서류상으로만 잘못된 거란다. 아무 문제없다는 식이다. 그리고 오류를 시정했단다. 새로 작성된 근로계약서를 내민다. 소장이 있는 자리에서 경비아저씨 한 분을 불러올렸다.

"아저씨, 지금 아저씨 휴게시간을 어떻게 알고 계세요? " "점심시간 한 시간 쉬고요, 저녁시간 한 시간 쉬고요, 밤 12시부터 아침 5시까지 쉬니까, 휴게시간이 7시간입니다." 이 아저씨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계약서에서 드러난 것보다 문제가 더 크다. 아침 5시부터 6시까지는 할증이 붙는 심야근로시간이다.

결국, 입대의의 결의에 따른 휴게시간의 변경은, 경비 아저씨들에게 고지되지도 않았던 거다. 심지어 근로계약서에서도 그대로였다. 변경된 휴게시간은 오로지 소장과 경리주임의 머리 속, 그리고 근로계약서상의 임금 란에만 반영되어 있었다.

소장이 새로 고쳐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언급했다. "이거 언제 싸인하셨어요." "아까 올라와서 싸인하라고 해서 싸인했습니다. "  내가 전화로 임금산출식을 보고하라고 하자, 그제서야 근로계약서 상의 시간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된 소장과 주임. 2014년 근로계약서의 흠을 가리기 위해 2014년이 다 지나가는 지금, 2014년 1월 1일 날짜의 근로계약서를 새로 작성한 것이다. 엉터리 근로계약서다.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관할 근로감독관에게 질의했다. 근로감독관은 사용자인 입대의 이사가 최저임금제 위반 사실을 얘기하는 게 의아하다는 식이었다. 하긴 사용자가 최저임금제 위반을 알았다면 근로감독관을 찾아갈게 아니다. 직접 시정하면 될 일이다.

우리 아파트는 자치관리다. 사용자인 입대의는 문제가 될 경우 직접 형사책임을 질 수도 있는 당사자다. 하지만, 입대의의 과실은 아니잖는가? 계약체결의 주체도 관리소장이었다. 자칫하면, 관리소장의 잘못을 입대의가 뒤집어 쓸 판이다. 미지급금을 뱉어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벌금까지도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아파트에 손해가 되는 일이었다.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려놓는 게 필요했다.

마침 현 입대의와 새로 구성된 내년 입대의의 상견례 겸 업무인수인계 자리가 저녁에 있었다. 모두 있는 자리에서 현임 회장에게 보고했다. 분위기는 험악했다. 모두들 문제만 불거지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없다는 투였다. 소장은 문제가 일어나면 자신이 책임지겠노라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큰 소리쳤다.

새로 구성된 입대의 이사 한 분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 경비아저씨들이 문제를 삼습디까? 왜 정 이사가 나서서 그럽니까?  정 이사는 아파트 편입니까? 경비들 편입니까?"

일류대를 나오신 전직 미술선생님. 내가 두 번을 찾아가 동대표 출마를 읍소했던 바로 그 분이었다. 다섯 명의 입대의 구성원 중 캐스팅보트를 쥔 분. 앞으로도 소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편을 만들어야만 했던 분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2년이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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