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올림픽 챔피언이기도 한
중증 1급뇌성마비 장애인 박세호씨가
국방부에 입영를 희망하는 민원을 냈다.
"유승준씨를 보고 국방의무를 깊이 생각해 보"셨댄다.
"비록 장애인이지만 비록 하루라도 좋으니 나라를 지키고싶다는
강한 욕망에 펜을 들으"셨댄다.
때마침 국방부에겐 반가운 제안이었다.
가뜩이나 당시 유승준씨 도피사건 때문에..
어떻게하면 장정들의 병역의무이행의지를 고취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터였다.
박씨의 제안은 전격적으로 수용되었다.
그가 입영 열차를 탑승하는 날..
방송3사에서 모두 부산역으로 카메라를 내보냈다.
심지어 어느 방송사는
세 개의 프로그램에서
따로따로 카메라가 나갔다.
부산역에는
박세호씨의 입영을
아니 정확히는 2박3일 병영체험을 환영하기 위한
군악대의 군가소리가 쩌렁쩌렁 귀를 울렸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어쩌면 국방홍보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는
박세호씨의 도전을 폄하할 수 없는 이유는
그는 자신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적어도 그는 강제징집에
장애인이 배제되는 현실을
불공평하다고 보지는 않았다.
또 모든 장애인이
군대에 의무적으로 입대해야
국민으로서 당당해진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만약 박세호씨가 병영체험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장애인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주장하며
다른 장정들과 동일한 수준의 군 생활을 고집하고..
그렇지 않는다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더라면..
또는, 모든 장애인들의 의무복무를 주장하고 나섰다면.
군 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들로부터도
그는 민폐 취급을 당하지 않았을까?
12년이 지난 지금
그의 도전을 돌아본다.
물론 잘 안다.
장애에 굴하지 않았던 그의 불굴의 의지와
유달리 불타는 애국심을..
그러나 그의 도전이 사실은..
병역의무를
마치 지극히 당연한 국민의 의무이자
심지어 영광인 것처럼 호도해온
국가주의자들로부터 학습된 결과이며..
결국 그 자신이 그 학습의 주체가 되어버린 것.
그것은 그가 지닐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한계일지도 모르리라.
다만,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박세호가 지녔던 시대적 한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수준에서 더 퇴보해버린..
여자 대학생들의 행보는
해괴하기만 하다.
적어도
이 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공평, 불공평을 따지며
당당해지려고 하기 보다는.
과연, 전 장정들을 대상으로 한
강제징집제가
이 나라의 국방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지.
그것부터 고민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