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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0일 수요일

표창원이 야당 지지자들로부터 다구리를 당한 적이 있다...





작년 봄. 세월호 참사 직후의 일이다. 표창원이 야당 지지자들로부터 다구리를 당한 적이 있다.  "세월호 참사의 해결은 ‘박근혜를 잊을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라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당시 지식인으로서 당연히 할수 있는 말을 한 것 같은데 그날은 하루 종일 트위터에서 다구리 당했다. 하여간, 이쪽이든 저쪽이든, 자기 생각이랑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는 용납하지 못하는 족속들이란.

오늘 MBN 인터뷰를 보고 환호하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을 보니, 문득 그 때 생각이 난다.  명색이 심리학자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중들을 기분 좋게 만들자고, 말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표창원 교수에게  한번도 발견해본적은 없다.  몰라서가 아닐 것이다.  어떻게 빨아줘야 대중들이 좋아할 지 어쩌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렇게 하지 않는 까닭은  어쩌면,. 그렇게 하기엔 표 교수의 비위가 약하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오늘 MBN 인터뷰를 보면서 몇 번씩 들었다.

정치인에게는 표의 등가성이 있다. 무식한 표나 똑똑한 표나 다 같은 한표다.  반면, 달리 학자는 진리를 추구한다. 표창원, 그는 곱씹어볼 수록  정치인보다는 학자가 어울리는 사람이다.

문제는 앞으로 정치인이 된 학자 표창원을 바라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너무 뜨겁다. "노무현 관장사" 라는 제목을 뽑은 한겨레 앞에서, 국회의원 후보 권은희를 검증하는 뉴스타파 앞에서 이들이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얼마나 뜨거워질 수 있었는지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지금 표창원을 뜨겁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과연 앞으로 표창원을 어떤 온도로 바라볼까? 정치인 표창원 앞에서 다시 한번 그들의 뜨거움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슬픈 순간. 그 시간이  머지 않았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지금 뜨거운 마음으로 표창원 교수를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지지자들은 명심하자.  같은편만 결집하는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다른편을 설득하는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적에게 적용한 기준을 우리 편에게도 적용하는 공정성이 필요하다. 오늘 표창원 교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속시원함"은 바로 이러한 공정함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앞으로 표창원 교수의 기준이 우리를 향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과연 냉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일 능력이 있을까?  작년 표창원을 다구리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성찰하며 미리 생각해 볼 일이다.

2015년 12월 27일 일요일

[가족간의 종교갈등] 초등학교 다니는 자식이 어느날 갑자기 교회에 나가겠다고 한다면..





아직 애인도 없는 처지다. 이런 내가 생길지도 모르는 자식 걱정을 하는 경우처럼 아직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가 있다.

혹시 나의 2세가 나와는 다른 종교적 선택을 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할 때가 대표적이다. 사실 “가족 간의 종교갈등”은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그것 때문에 살인도 벌어지고, 무고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기도 한다. 볼테르로 하여금 “똘레랑스론”을 쓰게 한 것도 결국은 “가족 간의 종교갈등”이 바로 그 시발점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내가 열심히 성당에 다니던 시절엔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때 나는 내 2세가 나와 다른 종교적 선택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당연히 가톨릭적인 인간으로 기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줄 알았다. 나에게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그때 나는 외면하기 일쑤였다. 하물며 종교적 선택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나의 2세가 나와는 다른 종교적 선택을 하면 어쩌나? 이 고민은 내가 교회와 이별한 순간부터 벌어졌다. 그 녀석이 교회나 성당, 또는 절에 나간다고 하면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지? 어느 날 갑자기 아들 녀석이 친구 따라 성당에 나가겠다고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곤 했다.

그런데 이 고민을 현실로 직면하신 분이 페친 중에 계시나 보다. 철학자이시다. 이렇게 철학적인 고민을 많이 하시는 분들조차도, 자식 문제에까지 철학적인 판단을 하기엔 현실이 팍팍한 것일까? 아! 결국 부모가 된다는 건 바보가 되는 것인가?

나라면, 그래도 자녀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어떻게 자녀가 내 맘처럼 되길 바라나? 다만, 그 선택에 내가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랄 수 밖에. 그러려면 적어도 자녀와 충분한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대화라는 게 생각보다 무지 귀찮고 지난한 일이다. 게다가 보통의 아빠들은 바쁘기 이를데 없다.

그래서 매우 슬프게도 결국 많은 부모들에 의해 폭력이 동원된다. 그게 다! 부모들에게 대화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바쁘시다잖는가? 한국에 사는 얘들이 민주사회의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지 못하고, 결국 힘을 숭상하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왜 진리의 힘을 불신하는가? 자유롭고 공개된 장소에서 진리가 허위를 이기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녀 앞에서 진리의 힘을 불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진리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진리란게 얼마나 비싸고 귀찮은 건데.. 게다가 본인 스스로가 자신이 진리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녀를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하긴 자녀처럼 쉽게 굴복시킬 수 있다고 여겨지는 상대 앞에서 귀찮게 대화를 동원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차라리 자녀 앞에서 솔직해지는 건 어떨까? 아버지도 (또는 어머니도) 진리와 허위를 완전히 구분하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결점 많은 인간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그런 곳에 가는 것을 부모로서 염려하는 이유를 최선을 다해 솔직하기 얘기해 주자.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교회에 나가겠다고 한다면? 그 때는 답이 없다. 가지 말란다고 해서 안 갈 얘가 아니다. 부모 몰래 교회에 나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부모자녀간의 소통의을 끈을 유지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확실한 것은 자신이 자녀를 마음대로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부모치고, 이런 소통의 끈을 잘 유지하고 있는 사이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언젠가 성매매 처벌을 반대하는 주장을 피다가 굉장히 도발적인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네 딸이 성매매를 하겠다고 하면 어쩔래?” 그 때 나는 진짜로 내 딸이 성매매를 하겠다고 나서는 끔찍한 상황을 상상하고야 말았다. 심사숙고 끝에 내놓은 내 진심어린 대답은 이러했다.

“딸에게 성매매를 권장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매매를 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막을 방법도 나에겐 없습니다. 내가 하랜다고 하고, 하지말랜다고 하지않겠습니까? 다만, 만약 그들이 성매매와 관련해서 저에게 진로에 대한 상의를 해온다면, 난 다행스럽고 기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동안 내가 그들과 굉장히 잘 소통해왔다는 뜻일테니까요. 아빠에게 자신의 성매매에 대해 상의를 할 만큼 친밀한 딸을 저는 일찌기 본적이 없습니다.”

새해를 맞아서 영어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 있지?




새해를 맞아서 영어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 있지?
오늘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유용한 공짜 사이트들을 몇 개 소개시켜줄게..

lil-fingers


유아를 위한 영어교육사이트다.
'Storybooks' 코너에 들어가면
유아용 영어동화를 볼 수 있다.


starfall



어린이용 무료 동화읽기 서비스다. 총 네 단계인데.
1단계 : ABC
2단계 : Learn to READ
3단계 : It’s Fun to READ
4단계 : I’m Reading
마치 진짜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Cbeebies



BBC판 뽀뽀뽀다.
Story time을 선택하면
동화책을 읽어준다.
영국식 악센트다.


Fun Brain 



미국판 네이버 주니어.
reading을 선택하면, 책 목록이 나오는데
이 중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라서 읽으면 된다


Story Line Online



미국배우조합에 소속된 배우들이
직접 책을 읽어주는 사이트.


Storynory 



영국의 영어동화 사이트.
영국식 영어발음을 사용한다.


andersen fairy tales 



동화작가 한스 앤더슨의 작품을 들려주는 사이트.


grimm fairy tales



그림형제의 작품을 들려주는 사이트다.


silly books



어린이들을 위한 영어교육 사이트.
'Books' 코너에 들어가면
예쁜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통해
영어동화를 들을 수 있다.
자막에 현재 읽히는 단어를 녹색으로 표시해 준다.


Books should be free



“책들은 공짜여야 한”단다.
e-book과 오디오북을 동시에 제공하여
영어공부하기 좋다.


Listen and Write 



열심히 듣고 열심히 받아적는 방법으로
듣기를 연습하는 사이트다.
회원을 가입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록을 저장하려면 회원가입을 해야만 한다.

Full Books



인터페이스가 매우 간편하다. 검색기능도 없다.
알파벳 순서로 영어 소설 작품들이 정리되어 있다.
스마트폰으로도 접속이 가능하다.


Loudlit 



여러 종류의 영문학 작품을 오디오북 파일로 제공한다.
Novels, Poetry, Children's, Historical, Short Stories 등
장르별로 작품들이 정리되어 있다.


Lit2go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에서 구축한 무료온라인서비스다.
제공하는 트랙이 5000건이 넘는다.
허클베리핀의 모험, 톰소요의 모험, 셜록홈즈, 이솝우화,
이상한나라의 엘리스, 80간의 세계일주, 죄와벌, 햄릿, 올리버트위스트 등
수많은 오디오북을 공짜로 읽으며 들을 수 있다.


Virginia.edu



버지니아대 도서관이 제공하는 E-book


Voices in the Dark



영어책 + 오디오북 세트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오디오북을 녹음하여 만들어가는 사이트다.


YBM CNN



매일 제공되는 2분 남짓 CNN뉴스 영상을 시청하면서
영어공부를 하는 곳
대본과 해석본 MP3가 모두 제공된다.


ESL video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해도를 측정하기 위한 다양한 문제가 준비되어 있다.
Beginning, Low Intermediate, Intermediate, High Intermediate, Advanced
다섯 개 수준 중에 하나를 고르면 각 수준별로 많은 동영상이 준비되어 있다.


American Rhetoric



역사적인 명연설을 한자리에 모아둔 사이트다.
mp3도 준비되어 있다.


Project Gutenberg



프로젝트 구텐베르크(Project Gutenberg)는
인류의 자료를 모아서 전자정보로 저장하고 배포하는 프로젝트다.
1971년 미국인 마이클 하트(Michael Hart)가 시작했다.
인쇄술을 발명하여 지식의 전달을 급속도로 확장시킨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인터넷에 전자화된 문서(e-text)를 저장해 놓고
누구나 무료로 책을 받아 읽을 수 있는 가상 도서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기여하여 만들어지는 프로젝트로
이미 수많은 고전의 원문이 모여 있다.
2006년 3월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발표에 따르면,
프로젝트는 18,000개 항목 이상의 전자문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주 50여개의 새로운 전자책이 새롭게 등록되고 있다고 한다.
프로젝트에 등록된 전자책은 대부분이 서구의 문학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시, 단편소설, 드라마 등의 문학작품 외에
요리책, 사전류, 정기간행물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일부 오디오 파일과 음악 악보 파일도 갖고 있다.
대부분은 영문 서적이지만, 다른 외국어 문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lyrics training



팝송을 따라부르면서
받아쓰기 연습할 수 있는 곳


npr



미국공영라디오 방송이다.
듣기에 어느 정도 자신있는 이들에게 권장한다.
고급어휘가 많이 사용되고 말하는 속도도 빠르다.


Bloomberg



경제 뉴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뉴스채널이다.


C-span



미국정부활동과 공공이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24시간 케이블채널이다.
고급영어를 공부하고자 할 때 활용하길.


CNN video 



동영상 길이가 짧다.
자투리 시간에 한편씩 보면서 공부하기 좋다.


TED


다양한 주제의 강연영상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영어자막 뿐만 아니라 한글 자막도 지원한다


VOA Learning English


Voice of America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다.
세 개의 레벨로 나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발음으로 아주 천천히 읽어준다.
각 기사마다 Words in This Story 코너가 있어서 필요한 어휘를 잘 설명해놨다.
뉴스 읽기나 뉴스 듣기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장 좋다.



2015년 12월 22일 화요일

"연탄색이랑 얼굴색이랑 똑같네"라는 말을 듣고 화내는 사람들이 난 더 웃겨.






"연탄색이랑 얼굴색이랑 똑같네"

한 정치인이 한 흑인과 연탄봉사를 하면서 한 말이야.
이 말을 들은 흑인은 아무렇지도 않았어.
그게 어쩌면 당연한게 그 흑인은
연탄처럼 까만 자신이 자랑스러웠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정치인의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분기탱천을 해..

흑인에게 까맣다고 하는 건 큰 실례라느니,
인종차별이라느니..
파리같으면 상상을 할 수 없다느니..

그런데 난 그 정치인에게 분기탱천하는 이 사람들의 말 속에서
흑인에 대한 묘한 폭력을 느껴.
자신이 까만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그 흑인에게
당신은 까만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맞다고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생각해봐.
자신의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인에게..
"부끄럽지? 그런 말을 듣고 얼마나 수치스러웠니?
감히 네가 한국인이라는것을 언급하다니..
저 사람은 참으로 몰상식한 사람일게야"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다는 거지.
뭐가 더 큰 실례지?
 
물론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배제하거나
까맣다는 이유로 흑인을 놀린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지..
 
그런데. 그것도 아닌데..
까만 사람을 까맣다고 하는데..
당사자들이 왜 그걸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지?
 
혹시 흑인들은
자신들이 까맣게 태어난 걸 저주로 생각할 거라고..
그런 이상한 단정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왜 그렇게들 호들갑이냐고?
 
아프리카에서 오신 그 분은
자신이 까만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제발 우리의 시선으로 그분들을 재단하지 말자고..
 
신경질 나는건
어쩌다 보니 내가
김무성같이 비열한 같은 새끼
역성드는 꼴처럼 되어버렸다는 거야.

물론 나도 김무성이 하는 짓
맘에 드는 것보다 안드는게 더 많아.

그렇다고 그냥 말하나하나 죄다
꼬리잡고 물고 늘어진다면..
김무성에 대해 우리가 하는 비판의 무게가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그 부메랑이 결국은 우리사회 전체에 돌아간다고...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
틀린 게 아니라는 거!!!

2015년 12월 19일 토요일

책임을 전제했을 때만 한정되는 자유의 의미






오래 전에 살다간 횽님들 중에 디오게네스라는 횽님이 계셨어. 이 양반 스타일이 무지 자유로웠대. 다들 알지? 알렉산더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고 물으니까.. “지금 당신이 해를 가리고 있어서 불만”이라고 했다는 바로 그 횽이야

그 횽. 철학하는 스타일이 이래. 광장에서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막 치는 거야.. 모여있는 사람들이 소리 치고.. 아녀자들은 꺅꺅 대고 난리나지 않았겠어? 그럼, 딸딸이치던 손으로 배를 한번 쓱 문질러. 그리고 한마디 하는 거지.. “ 자지를 문지러서 성욕이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배를 문질러서 배고픔이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에 말이야, 누군가 광화문 이순신장군앞에서 이 디오게네스처럼 자유롭게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는 사람이 있다 치자. 오해하지 마. 내가 그러고 싶다는 건 절대 아냐..

이게 과연 행위자의 자유인가? 여기서 의견이 갈려. 자유라는 친구도 있고. 자유가 아니라는 친구도 있는 거지. 일단. 광화문광장에서 이 디오게네스처럼 자유롭게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는 것을 자유라고 말하는 친구를 한번 따라가 보니까. 뭐라고 하나 봤더니. “자유이긴 하지만, 책임을 져야” 한다네?

광장에서 자유롭게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겠다는데. 도대체 무슨 책임을 져야 물으니까. 공연음란죄의 형사처벌을 받고,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장되는 것.. 이게 바로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이라는 거야..

아! 그렇군.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길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자유는 있을지 몰라도, 그 자유에 대한 댓가는 아주 혹독하게 치러야 하고. 그 혹독한 댓가가 바로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이라는 게 바로 그 사람의 주장인거야.

그런데 궁금해졌어. 이렇게 그 행위에 대한 혹독한 대가가 예정되어 있고, 그 혹독한 대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는 행위. 그 예정되어 있는 혹독한 대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위축되어 그러한 행동을 하길 감히 삼가는 상태. 그런 상태를 과연 그런 행위에 대해 자유로운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자유의 정의에 대해 한번 다시 톺아보자고.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그런데, 그 행위에 대한 혹독한 대가가 예정되어 있고, 그 혹독한 대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감히 실현할 수 없는 상태가 정말 “자유”로운 거 맞냐고?

광장에서 자유롭게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는 사람이 형사처벌을 받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당하는 건.. 주어진 금기와 규율을 어긴 데 대한 형벌일 뿐이지. 자유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고!! 그게 자유였다면 애초부터 책임을 요구하지 않겠지. 책임을 요구한다는 건.. 애초에 그런 자유가 없다는 거랑 마찬가지인거라고.

여태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자유'의 의미를 '책임의 한 전제조건이 되는 것'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인간을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단순히 전개시키는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에 불과해. 마치 책임이 전제된 상태에서 자유를 인정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자유를 구속하는 모든 것들을 사람들로하여금 아무 비판없이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것이지.

우리 인간이 주어진 것을 단순히 전개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창조적으로 자기 형성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길 원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 우리는 단지 그 법에 복종하기만 해야 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러한 법을 스스로 만들거나 폐지하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존재인가?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길 원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매장시키는 사회.. 우리는 단지 그러한 사회에 복종하기만 해야 하는 존재인가? 그러한 사회를 스스로 만들거나 바꿀 수 있는 존재인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한 마디는 이런 고민들을 모두 차단해버린다고.

물론 현대판 디오게네스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절대 아냐. 그게 법이든, 금기든, 현대판 디오게네스같은 사람들의 자유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 외에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는 거지..

디오게네스의 자유를 존중해주자면, 침해할 수 밖에 없는 다른 사람의 더 중요한 자유가 아니면, 우리는 디오게네스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거야.. 여기서 우리가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많은 사람들의 “불쾌하지 않을 자유”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물론 많은 사람들이 불쾌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참 아름답고도 중요한 일이야. 그런데, 누군가가 불쾌하다는 이유로 다른 누군가의 자유를 부정할 수 있다면, 애초부터 자유를 말하는 게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아무도 불쾌하지 않게 만드는 누군가의 행동에 대해 혹시 “자유”가 문제되는 거 본 적 있어? 원래 “자유”라는 관념은 말야, 자기들이 불쾌하다는 이유로 남의 행동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싶어하는 인간들 때문에, 그런 억압자들에 반대하기 위해서 생겨난 거라고..

2015년 12월 17일 목요일

인권은 이성의 산물일까? 감성의 산물일까?






인권은 이성의 산물일까? 감성의 산물일까?
 
그것가지고 한 인권단체 친구들하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나는 이 논쟁이
성악설, 성선설하고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인권이 이성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것은
성악설에 가깝고.
인권이 감성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것은
성선설에 가깝다는 거지..
 
그런데, 성선설을 채택하거나..
인간의 본래적 감정을 너무 신뢰하다보면..
빠질 수 있는 오류가 있어..
바로. 인간의 자격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려는 것이지..
 
그들은 인간은 원래 선하다고 믿기 때문에..
나쁜 마음을 가지거나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인간 같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는 거야.
 
게다가 생각보다 세상에 많아.
인간의 자격..
그것을 결정할 자격이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데  말이지..
사람이 자신이 사람이길 포기할 수 있다면..
누군가 타자가 다른사람의 행동을 들어
그 사람의 권리포기여부를 대신 결정하거나 간주할 수 있다면..
인류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인권"이라는 관념은
한 순간에 쓰레기가 되는 거야.  
 
인권이라는 관념은
인간이 가지는 어떤 권리 중에는
양도하거나 처분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확신에서 출발하기 때문이지.
     
그런데도
자신은 매우 특별해서
마치 인간의 자격을 결정할 자격이
자기한테만큼은 있다고 믿는 얘들이 있는데..
얘네들한테는 약도 없어.
   
"저 놈은 인간이길 포기한 놈이야"
비장하게 이렇게 말하면
멋있어보인다고 생각하는 걸까?
   
스스로 포기하지도 않았는데,
타자의 행동을 두고 옆 사람이 분노에 가득차서,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했네" 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권한 하에 있지 않는 것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려는 유아적인 발상이거나
자신만이 옳다는 병리적인 상태에서 비롯된 거거든.
한마디로 제일 빙신같은 거지..
   
물론 인간들이 하는 행동 중에서는,
인간이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기대되는 것들이 틀림없이 있어!!
   
그러나, 곰곰히 톺아보자면,
원래 인간이 아닌 동물들은 그런 흉폭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세상에서 가장 흉폭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동물은 다름 아닌 인간이라고..
따라서 가장 분노를 불어일으키는 것도 사실은 인간이고..
어찌보면 흉폭한게 가장 인간스러운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
   
중요한 것은
나약하고 불완전하며 결점이 많은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깨닫고..
이성의 힘으로 그것을 이겨보려고 애쓰는 것..
그게 인권의 본질이 아닐까?
     
잊지 말자고.
세계인권선언은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갖는 고유한 존엄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이성의 힘으로) 승인하지 않을 때,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만행이 초래되었다는 자각에서 출발했다는 것.
 
인권..
대개는 인간이 주체가 되는 권리라고 받아들여지는게 보통이지만.
사실은 인간에게 부여되는 의무라고 생각하는게
더 필요할 때가 있어..
     
누구도 산에 갔다가 아생동물에게 물어뜯겨 죽는것을 인권침해라고 하지 않지.
빌딩만한 쓰나미가 몰려와 많은 사람들이 죽는것을 인권침해라고 하지 않아.
인권침해라는 표현은 사람이 사람한테 한 짓에만 유효하다고.
   
그렇다면 인권은 단지 누군가의 권리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는 의무라는 거..
   
인간 대우해주기 싫은 사람 앞이라고 해서
만약 우리가 그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바로 그 인간대우해주기 싫은 바로 그 사람하고
달라질 게 하나도 없다고.
   
흉악범이 처벌받는 이유는,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였기 때문인데..
이것은 자신의 인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를 져버렸다는 말이기도 해..
그런데도 흉악범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흉악범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인무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고..
   
그건 흉악범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 대한 문제가 되는 거지..
 
He who fights with monsters might take care lest he thereby become a monster.
And if you gaze  for long into an abyss, the abyss gazes also into you.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