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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4일 수요일

"굶주린 자가 음식을 훔친 건 죄 아니라는" 이태리 판결.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가?


법이 금지하는 행위를 자행해서, 그 행위가 범죄의 요건을 구성하더라도, 처벌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어려운 말로 “위법성의 조각”이라고 한다. 우리 형법은 위법성이 조각되는 사유로 크게 다섯가지를 정하고 있다. 정당행위(正當行爲), 정당방위(正當防衛), 긴급피난(緊急避難), 자구행위(自救行爲), 피해자의 승낙(被害者의 承諾). 이 다섯가지가 그것이다.

오늘은 그 중에서 형법 제22조가 정하고 있는, 긴급피난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조문부터 살펴보자.

형법 제22조 (긴급피난)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긴급상태에서 자기나 타인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행위라는 점에서, 긴급피난은 정당방위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정당방위는 언제나 부당한 공격을 전제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공격을 해온 자에 대해서만 방위행위가 가능하다. 긴급피난은 다르다. 부당한 침해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부당하지 않은 침해에 대해서도 가능하다. 즉, 위난을 야기한 자 이외의 자에 대해서도 피난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피난행위가 상당한 이유를 가지려면 그 행위가 보충성과 균형성, 그리고 피난수단의 적정성을 충족해야 한다.

보충성. 그 방법이 아니고서는 그 위난을 피할 방법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균형성. 덜 중요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더 중요한 법익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적정성. 그 방법이 위난을 피하는데 효과적이어야 한다.

도대체 어떤 경우를 말하는 걸까? 버스 운전자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나자 승객의 안전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정차되어 있는 타인의 차를 들이받고 멈춘 경우, 손괴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을 지나다 맹견이 덤벼들자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모르는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죄를 묻지 않겠다는 거다.

지난 2일. 긴급피난의 사례로 역사에 남을만한 판례가 나왔다. 이탈리아에서다.

이탈리아 북부 제노바에 살던 우크라이나 국적의 남성, 로만 오스트리아코프는 약 5,300원 어치의 치즈와 소시지를 훔치다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6개월 징역과 100유로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잡힌 순간에 가게를 떠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긴급피난을 인정한 것이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피고가 가게에서 상품을 점유한 상황과 조건을 살펴볼 때 그가 급박하고 필수적인 영양상의 욕구에 의해서 이를 취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긴급사태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언론 스탐파 신문의 사설은 수석 판사의 발언을 인용하며 '생존의 욕구는 소유에 우선한다'고 역설했다.

이렇게 “굶주린 자가 음식을 훔친 건 죄 아니”라는 판결은 이탈리아에서 이뤄졌다. 2016년 5월 2일의 일이다.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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