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30일 수요일

강용석 의원 편 들어줄 생각은 전혀 없다



강용석 의원 편 들어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원래 고소남용도 악법에 대한 훌륭한 저항수단이 될수 있다. 한번 보라는 거다. 그 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걸려들어갈 수 있는지, 그 법이 힘을 발휘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처벌받을 수 있는지.

그런 의미에서 강용석이 문제 삼은 이른바 집단모욕죄 또는 모욕죄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다.




대한민국 형법은 사람을 공연히 모욕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문명사회 안에서 “모욕”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사람의 행위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정상적인 일인지 깊은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모욕"이라는 말은 깔보고 욕되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모욕이라는 말을 통해 금지된 표현이 어디까지인지, 구체적이고 명확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금지된 표현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법 규범을 근거로 이루어진 재판은 도덕재판일 수 밖에 없다. 권력자들의 주관에 따라 조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금지행위가 구체적이지 않은 법 규범은 처벌의 기준이 아니라 권고의 이념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를 위반하고 도덕 재판을 남발하는 것은 역사의 시곗바늘을 마녀재판의 시대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덕은 법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박구용이라는 철학자가 쓴 글을 일독해주시길 구하는 바다.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187453.html )

박구용교수에 의하면, 도덕적 규범이 법규범으로 전환될 수 있는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고, 둘째, 명확성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서 특별히 필자가 모욕죄에 있어서 문제 삼는 것은 명확성 부분이다.

문 명국가에서는 기본권제한법률이 불명확한 경우에 ‘불명확하기 때문에 무효(void of vagueness)'라는 이론이 적용된다. 처벌을 전제한 법규범은 명확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형벌을 규정하는 법률의 명확성에 대해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는” 상태로 보았다. (헌재2000.6.29. 98헌가10).

그런데 매우 슬프게도, 대한민국 형법의 ‘공연히 사람을 모욕하는 행위’라는 요건은, 이를 한정할 합리적인 기준이 없어서, 형벌법규의 구성요건요소로서는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불명확하다고 할 것인데,

대한민국 형법의 입법목적이나 그 전체적 내용․구조 등을 살펴보아도, 사물의 변별능력을 제대로 갖춘 일반인의 이해와 판단으로서도 그 구성요건요소에 해당하는 행위 유형을 정형화하거나 한정할 합리적 해석기준으로 찾기 어렵다.

한 상희 건국대 (법학) 교수에 따르면, “모욕죄라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없었던 '밀턴 시대'에 이교도나 반역자를 탄압하는 제도”였다.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감정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어서 부작용이 많았”고,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폐지”한 제도다.

사정이 이와 같은데도, 만약, 민주적 가치, 인종차별금지, 인신공격반대 등의 진보적 이상을 ‘모욕죄’를 통해 실현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진보의 가치와도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역사의 수레바퀴를 밀턴시대로 되돌리자는 것에 다름 없는 것이다.

지위에 걸맞지 않게 미성숙한 강용석을 비아냥거리는 건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참을 수 없는 강용석 개인의 미성숙함보다 더 참지 말아야 할 큰 일은, 이익에 따라 법의 모순을 외면하는 우리 전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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