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5일 일요일

특종 그리고 고소. 그 끔찍한 기억의 편린



특종 또는 특종기사란 무엇인가? 네이버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있다. "어떤 특정한 신문사나 잡지사에서만 얻은 중요한 기사." 다시 묻는다. 얼마나 중요해야 특종이라고 할 수 있나? 그 판단은 누가 하나? 여기에 대해서 언론계에서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나 또한 그러하다.

한 언론사가 제일 처음 단독으로 보도를 한 이후  다른 많은 언론사들이 뒤이어 관련된 기사들을 내놓을 때, 그 첫 보도를 특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내 기준이다.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볼 때, 나에게도 특종이 없진 않았다. 15년전쯤 썼던 대학생 계약동거모임 인터넷 카페에 대한 기사는 그 중 하나다.

먼저 그 카페의 회원 자격이 재미있었다. 성별을 구분하여 이중적이었기 때문이다. 남자의 경우 까다로웠다. 서울대, 고대, 연대 남학생이어야 했다. 학부가 해당대학이 아니면서, 대학원만 스카이인 남자 또는 고대 서창캠퍼스 연대 원주캠퍼스 재학생 또한 자격이 없었다. 반면, 여자는 심플했다. "용모가 단정한자"

자신을 마담최라고 밝힌 이 모임 개설자는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모든 결정을 하며, 본인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존중합니다. 상대방의 의사 등을 무시하는 강압 등이 있음이 확인될 시는 형사 및 민사상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라며, 이런 방식의 계약 동거에 대한 정당성을 시사했다.

자신을 서울대생이라고 밝힌 한 남자는, 40명의 서울대생을 가입시키겠다며 이런 모임에 대한 서울대생의 반응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모임의 게시판에는 서울대 학생증을 스캐닝해서 보내달라는 여성들의 요구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15년 전 당시만하더라도 계약 동거는 새삼스러울 일이 없었다. 내가 느낀 문제는, 이런 계약 동거 조차, 학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 이 사회가 얼마나 학벌 카스트를 정점으로 계급화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반영하는 일이다. 나는 이 카페를 우리 비뚤어진 사회상의 축소판으로 봤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모임을 통해, 만나는 남녀들의 동상이몽이었다. 세칭 일류대를 다니는 남자의 경우, 자신이 싫증날 때 부담 없이 떼낼 수 있는 섹스 파트너를 구하려고 하는데 반해, 여성들은 남자 한 명 잘 낚아 신분 상승을 꿈꾸고 있는 속내가 뻔히 들여다 보였다.

기발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취재가 집요했다거나 기사의 품질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우연찮게 내 눈에 들어온 인터넷 카페였다. 문제의식을 느꼈지만, 가볍게 생각했다. 단신 기사를 하나 냈다.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를 잡은 격이랄까? 기자의 손을 떠난 기사의 반향은 기자의 눈에도 놀라웠다.

이후, 당시 거의 모든 중앙일간지가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내 것을 우라까이한 것도 있었고, 자체 취재 후에 낸 기사도 있었다. 특종이었다. 며칠 후, 마담최는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마담최는 해당 학교 중에 사립학교에 편입한 학생으로 알려졌다. 해당 카페는 폐쇄되었고, 해당 카페에 대한 안티카페가 개설되었다.

15년 전 케케묵은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뭔가? "내가 왕년에는" 식의 특종 자랑을 하기 위함은 아니다. 이 사건으로 인한 경험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해당 카페에 대한 안티카페가 개설된 것을 보고 나도 가입했다. 그런데 가입하고 보니, 그 카페 안에서는 논의가 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문제의 동거모임 카페보다 그것을 소개하는 언론의 문제라는 식이었다. 안티카페 운영자는 “마담최의 일탈은 별 문제가 아닌데, 언론이 소개하고 부추기는 바람에 그런 식의 학벌사회를 더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난 커밍아웃했다. 내가 그 기사 제1보를 쓴 장본인이고, 그때 관련해서 쏟아지고 있는 모든 기사의 출발점이 나라는 것을 밝혔다. 논의는 더 뜨거워졌다. 자신을 신문방송학과에 재학중인 학생이라고 소개한 한 회원이  내 기사를 자신이 참여하는 수업의 주제로 발제를 했는데, 수업참가자들 모두, 그 기사나 언론의 태도에 어떤 문제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오기도 했다.

급기야, 카페 운영자는 내가 마담최의 꼬봉이라고 주장한 뒤 강퇴시켰다. 황당했다. 그 후 나는 그 카페 운영자를 명예훼손혐의로 처벌해달라는 취지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런데 그 사건은 결국 공소권없음으로 종결되었다. 피고소인이 숨진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의 한 명문사립대 대학원에서 건축에 관련된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 카페 운영자. 노량진의 한 고시원 자기 방에서 이상한 냄새를 호소하던 다른 원생에 의해 숨진채 발견되었다. 정확한 사인은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아마 뇌출혈인가 그랬다.

나를 모함한 사람. 그래서 내가 고소한 그 사람. 그 사람의 죽음. 멍했다. 그걸 접한 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기분이 그렇게 더러울 수 없었다. 더러워진 자신의 기분을 느낀 내 스스로가 이상할 정도였다. ‘아니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나빠지지?’ 한 일주일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마음에 없는 욕까지 중얼대고 있었다.  “아니 씨팔놈. 죽으려면, 벌이나 받고 죽든지”

최근 나를 모함하던 한 인터넷 신문 기자가 적반하장격으로 나를 고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인터넷신문기자. 일베 악플러에 또박또박 대응하는 것으로 유명해진 바로 그 기자. 그리 강력한 멘탈의 소유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소장의 논리 속에서도 억지와 모함, 그리고 아전인수식의 상황해석이 엿보인다.

15년전 사건이 떠오른다. 그 사건의 충격이후 웬만하면 명예훼손 고소를 하지 않으려던 나다.  그런데 내가 고소를 하지 않으면 내가 꼼짝없이 명예훼손으로 엮일지도 모른다. 검찰과 사법체계에 대한 예측가능성과 신뢰가 어느 정도만 되도 단순히 무죄를 주장하고 넋 놓을 수 있겠다. 그런데 매우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진흙탕 속으로 끌려 당겨지는 느낌이다.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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