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8일 수요일
우리 아파트 경비원들. 노예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 아파트에서 경비아저씨들에게 2014년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던 사실을 이미 말한 적 있다. 2014년 초. 경비원들에 대해 최저임금90% 적용이 되면서 입대의에서 지시한 대로 임금을 맞추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휴게시간 변경은 아저씨들에게 제대로 고지되지도 않았다. 심지어 근로계약서상에서도 휴게시간이 변경되지 않았다. 변경된 것은 근로계약서상의 임금 뿐이었다. 최저임금법 위반이다.
문제는 그것 뿐이 아니었다. 우리 아파트는 근로자 10인 이상이 근무하는 사업장이다. 근로조건 변경시에는 취업규칙을 변경한 후에 노동부 장관에게 그 내용을 신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2011년 이후 취업규칙은 한번도 변경된 바가 없었다.
감시단속적근로자에게는 휴게시간과 휴일에 대한 특례가 주어진다. 이것은 사용자에게 특혜다. 그래서 그 특례를 적용받기 위해서는 역시 노동부로부터 감단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노동부가 감단승인신청을 받으면, 근로조건, 업무실태, 사업장실태 등을 조사한다. 그리고 그 업무가 실질적으로 감시단속직이라 할 수 있는지 판단하고 그 승인여부를 결정한다.
승인 이후에 근로조건의 변경이 이루어지면, 애초의 승인은 당연히 그 효력을 잃는다. 다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동안 수차례 근로조건의 변경이 있었다. 그런데 불구하고 한 번도 감단신청 갱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아파트의 감단승인의 날짜는 2002년에 멈춰있었다.
올해부터 경비원에 대한 최저임금법 100% 적용이 실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소장은 입대의에 총액기준의 예산안 승인안을 올려놨다. 경비원 임금인상안에 대해 7%냐 9%냐? 그것을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입대의에서 통과된 7% 임금인상안.
작년 최저임금법에도 못미치게 지급된 금액. 그것을 기준으로 7% 인상한다는 것이었다. 관리사무소가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근로조건의 파행적인 변경이 불가피했다. 근로자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결정만 하라고 하는 소장이 의아했다. 도대체 뭘 믿고 저런단 말인가? 게다가 휴게시간이 7시간으로 되어 있는 기존 근로계약서는 2015년 8월까지 유효했다. 입대의는 소장의 말만 믿고, 일사천리로 경비원임금 7% 인상을 결정했다.
난 경비아저씨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어떤 서류에도 싸인하지 말라는 것. 소장이 서류에 싸인을 요청하면 바로 응하지 말고 "생각해본 후에 싸인하겠다"는 취지로 미루라고 했다. 그리고 경비아저씨들도 수긍하는 듯 했다. 경비 아저씨들이 아무 서류에도 싸인 하지 않는다면, 입대의 결의는 소용 없었다. 입대의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의결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년 근로계약서상의 휴게시간은 올해 8월까지 유효했다.
그런데, 그제 26일. 퇴근 후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는 경비원 휴게시간 변경이 고지되었다. 휴게시간을 무려 아홉 시간 반으로 변경한 것이다. 점심시간이 무려 두 시간, 저녁시간이 무려 한 시간 반이었다. 야간 취침시간이 여섯 시간이었다.
발칙한 점은 "단지 사정을 감안하여 휴게시간에 경비실에서 쉬게 하겠다"고 공지한 점이다. 근로기준법 제54조 휴게시간 자유이용의 원칙 위반이다. 경비원은 왜 감단직 적용을 받는가? 주로 경비실에서 자리만 지키는 근무 상황을 감안하여 결정된 특례다. 그런데 휴게시간에 경비실에서 자리만 지키라고?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택배업무, 분리수거, 조경, 청소, 주차관리 등 업무가 그대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근무시간의 근로 강도는 더 늘어난 셈. 당연히 감단직 특례 취소 사유다.
더 골 때리는 건, 경비아저씨들이 이 공고를 본 후 한 순간에 우르르 무너졌다는 것이다. 경비아저씨들은 공고를 보고 모든 결정이 끝난 것으로 보고 체념한 듯 하다. 소장은 공고부터 내고 근로계약서에 싸인을 받았단다. 그리고 경비아저씨들은 순순히 싸인을 하셨단다.
노예란 무엇인가? 권리가 없고 의무만 있는 사람들을 노예라 한다.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들은 노예다. 그들은 싸인 조차 거부할 힘이 없었다. 아니다. 거부할 의지도 없었다. 자신이 노예인지도 모르는 노예다. 이들이 가진 권리는 오로지 그만두고 실업자가 될지 말지를 선택할 권리 밖에 없다. 실업자가 될 권리는 있으니 아주 큰 권리라고 여기는 자 여기 또 있는가?
이 분들을 노예라고 하지 않으려면 이들이 해고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휴게시간과 임금에 대해 관리사무소나 입대의와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이 분들이 입대의의 결정을 기다리기 전에 이 분들의 의사라도 알아봐야 하는게 마땅했다.
이 노예들이 확대된 휴게시간에 따라 휴게시간 자유의 원칙을 주장하고 자유롭게 경비실을 떠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이 혹시 있는가? 이들은 휴게시간에도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장은 그것이 자발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별수 있겠는가?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잘린다고 생각할 텐데.
더 끔찍한 것은 이 노예들이 아파트 주민들의 형편을 걱정해준다는 거다. 배려는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약자들이 배려를 한다. 이들은 자신의 노예상태를 직시하지 못한다. 비겁함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바꾼다. 힐링의 수사학이다.
여기 노예들이 있다. 해방시켜주어야 했다. 해방시켜주고 싶었다. 해방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노예들은 해방되길 거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부한 게 아니다. 자신들이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못 믿는 거 같다. 이 노예들은 해방을 선언했다가 죽음을 당한 다른 노예들을 그동안 너무 많이 봐왔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법이 노예의 죽음, 즉 해고를 막아주지 못했다는 것을 노예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없다. 권리 위에서 잠자는 노예를 도울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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