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친구와 헤어질 때 유독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헤어지려는 그 친구와 있을 때의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꽤 행복했었나 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준 그 친구에게 감사해할 일인데, 불완전한 사람종족들은 대개 그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슬픔과 아쉬움은 그 감사한 시간을 망각하는 수준을 넘어서고,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어느덧 감사는 슬픔으로, 슬픔은 원망으로, 원망은 복수로 변신하곤 하죠.
"쿨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데, 저는 이 말을 "기대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성친구와의 실연이 원망과 복수심으로 변모하는 까닭은 그 내 옆에서의 그 친구의 존재가 어느것 너무나 당연해졌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나 함께 하리라는 부질없는 기대 속에 그 동안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이성친구와의 시간들에 대한 감사한 자세가 개입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기대했으니까요. 그런 행복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는 "기대" "기대" "기대".
기대는 어느덧 상처를 만듭니다. 상처에 "비뚤어진 자존심"이라는 몹쓸 놈까지 끼어들면 "자기합리화"에 까지 이릅니다. 여기에 자신의 문제를 상대방의 문제로 치환시키는 병리적 태도까지 겹쳐지면,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하고 이상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끔찍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 법입니다. 여기서 "찌질함"이라는 말이 생겨납니다. "쿨함"의 반대말입니다.
상처? 기대를 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습니다. 실망? 기대를 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대를 버리세요. 뜻밖의 감사한 일들이 삶에서 튀어나와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이런 저도 때로는 기대를 합니다. 다만 제가 품는 그 기대가, 부질없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것이길 바랄 뿐입니다. 제 개성이 위협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 타인의 자유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과 많이 만났으면 하는 기대...
어제 저에게 댓글을 통해 “쿨병 걸린 병신”이라고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이런 분들을 악플러라고 하나요? 쿨한게 병신인지, 찌질한게 병신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찌질병 걸린 병신 대신에 쿨병 걸린 병신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쿨한 건 찌질한 병신이 되기 거부하는 이성의 산물입니다.
꼬다리.
압니다. 저처럼 정떨어지게 쿨한 사람도 드물다는 거.
사실은 저도 처음부터 이렇게 쿨하지는 않았답니다.
기대 많이 하고 상처 많이 받고.. 찌질하고..
내가 어렸을 때 여자친구와의 실연앞에서
얼마나 찌질했었는지 들으신다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저도 그 때 생각만 하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찌질함에서 쿨함으로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과정.
저는 이것을 스스로 '성장'이라고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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