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3일 토요일

조선일보에 답함. 인권단체들이 나영 앞에서 침묵하는 이유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권리” 인권은 이렇게 정의된다. 그런데, 왜 근대사회는 이런 인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일까? 그것은 모든 인간 - 인간의 탈을 쓴 모든 짐승 - 이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권리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권리를 누리기 어려운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권리를 누리기 어려운 사람들은 누구인가? 사회적 소수자로서 여성이나, 어린이, 장애인이 바로 그들이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피의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공분을 사고, 멸시당하는 범법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범법자가 타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그의 인권을 경시한다면, 우리는 인권을 처음부터 말하지 않는 것보다 더 바보같은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닐까?

인권침해 가해자에게도 배제되지 않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인권을 말하는 우리 문명사회의 합의이며, 인권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나영이 사건에 침묵하는 인권단체의 목소리가 조선일보는 못마땅한 모양이다. “전자팔찌 정도에 성범죄자의 인권 보호를 걱정했던 사람들”이라며, 비꼰다.

“‘징역 12년은 너무 약하다’고 분노하며 '피해보상'을 촉구하는 청원에 찬성 댓글을 단 국민 수십만명을 "파시즘 같은 여론재판"이라고 앞장서 비판해야 앞뒤가 맞을 것”이란다.

인권단체에 대한 왠지 모를 오기에 가득찬 조선일보 기자에게 답한다.

인권단체가 전자팔찌 정도에 성범죄자의 인권 보호를 걱정했던 것은 결코 성범죄 피해자의 인권을 경시하기 때문이 아니다.

인권단체가 옹호해주지 않더라도, 어린이 성범죄 피해자의 인권은, 징역12년은 너무 약하다고 분노해주는 국민들이 공감해주고 옹호해주지만..

매우 슬프게도, 성범죄 가해자의 인권은, 그 공분 때문에, 인권단체가 아니면, 옹호해줄 수 없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징역 12년? 약한 거 안다. 무기징역이라도, 치를 떨게 하는 가해자의 행위에 비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인간의 탈을 쓴 짐승에게도 인권의 이름으로 보장된 권리가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권의 정신이다. 그것을 부인한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인권을 말하지 않는 것보다 더 바보 같아 지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일은 “징역12년은 너무 약하다”고 분노하는 국민 수십만명의 목소리가 조선일보 기자의 말처럼, 여론재판이나 소급입법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 점에선 국민 수십만명이 이 악의에 찬 기자보다 성숙하지 않는가?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법률의 개정일 뿐이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온 국민의 공분 속에서도, 가해자에게 법이 정한 형량을 넘어서서 벌이 주어지는 인권침해는 일어나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일어날 위험도 적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서 인권단체가 나서야 하는가?

끝으로, 흉악범죄에 대해 무거운 형량만이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분노한 국민들에게 감히 말한다.

어린이를 상대로 성폭력을 자행하는 흉악범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들이 범행 후, 자신의 행위가 살인과 다름없는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게 되면, 흉악범들에겐 살인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진다.

반 항하는 어린이를 상대로 성폭력을 자행하고 잡히는 것과 범죄은폐를 위해 살인을 하고 잡히는 것. 만약 이 두가지 범행에 같은 수준의 벌이 내려지도록 법을 개정한다면, 우리는 미래의 수많은 나영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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