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3일 토요일
김부선을 보고 떠오른 내 젊은 날의 추한 자화상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남에 의해서 확인받아야 하는 사람, 곧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로부터 동의를 얻지 못해도, 자신을 스스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황임란) 내가 상처받지 않기로 마음먹은 이상, 어느 누구도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고 했다.
이런 나도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과거의 내 추한 자화상이 있다. 그때 생각만한다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그 과거 속의 나는 평생동안 나를 괴롭혀왔고, 아파도 앞으로도 평생 나를 괴롭혀올 것이다.
그 일은 다름아니라, 한때 사랑했었고, 떠나가는 그녀 앞에서 내 추한 바닥을 보여줘버린 일이다. 쿨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었다. 난 누가 뭐래도, 그녀 앞에서 추악한 찌질남이 되어 있었다.
그녀와 헤어지는게 싫은 나머지, 그녀에게 집착한 나머지, 사랑하는 그녀 앞에서 구체적으로 도대체 어떤 추악한 일을 정떨어지게 했었냐고? 제발 상상도 하지 말자. 생각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온다.
그 런데, 이런 나라고 특별히 나쁜 인간이겠는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사람 사는 모습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크게 다르지는 않은 법이다. 세상에서는 이런 일 때문에 고통받는, 또 고통을 주는 찌질남들이 심심찮게 상상을 벗어나는 사고를 치곤 한다.
쿨 하게 헤어지지 못해 치는 사고의 주범이 주로 남자인 이유는 뭘까? 여자가 더 참을성이 많기 때문은 아니리라. 거절공포와 달리 유기공포가 여자에게 더 큰 짐이라는 것은 여러 심리학자들이 증언한다. 찌질녀보다 찌질남이 더 많은 것은 다름 아니라, 편면적 순결이데올로기에 숨막히는 우리 사회는 헤어진 남자보다 헤어진 여자에게 더 모진 눈길을 주고 있던 탓이고, 그걸 이용해보려는 비열함으로부터 남자들이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이번에 사고를 친 당사자가 여성이란다. 사건의 주인공들이 알만한 사람들이라, 세간의 관심도 폭발적이다. 과연 김부선이 여성임에도 찌질녀가 되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혹시 그 상대방이 여성에게만 엄격한 편면적 순결이데올로기의 사각지대, 정치권에 있는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지금은 잘나가는 정치인이란다. ”피부 깨끗한” 변호사였단다. 행복했었단다. 그렇게 적극적인 남자는 없었단다. 고마웠었단다. 그러나, 그녀는 이 행복과 고마움을 그 남자가 거짓말쟁이 유부남인 걸 안 순간, 배신감으로 전환시킨다. 하긴 그런 배신감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그놈 나쁜 놈이다. 억울함.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억울함이 상대방 미래의 자유를 속박할 정당성을 만들어주진 않는 법. 그 억울함이 어떻게 다시는 정치하지 않겠다는 약조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도리가 없다. 상대남의 약속위반으로 인해, 말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억울함이 엄습해온 것도 나는 도무지 이해할 도리가 없다.
그 렇다. 이것은 집착과 복수심에 다름 아니다. 그녀는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치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배반이라는 사건은 복수심의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거짓말이 들통나 떠나간 나쁜 남자. 이렇게 살면 어떻고, 저렇게 살면 어떤가? 왜 거기에 집착하는가? 그게 어떻게 말하지 않고선 억울해 견딜 수 없는 일이 되는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최근 한 영화에 나온 대사다. 이 말은 사랑에도 유효하다. 왜 우리는 헤어짐에 슬퍼하기 이전에, 상대방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지나간 행복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외면하고 있을까? 그런 성숙함을 아쉬워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인가?
한때 나 때문에 힘들어했을 그녀에게 마음속으로부터의 깊은 사죄를 전한다. 그녀가 이 글을 볼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못 볼 확률이 더 많겠지. 나 같이 추하고 찌질한 남자로부터 고통받았던 여성이라면, 그녀 대신 사과를 받아줘도 좋다.
끝까지 예쁜 추억 못만들어줘서 미안하다. 평생 아프게 반성하고 있단다. 부디 좋은 것만 기억하고, 행복하게 살려무나,
그 리고 끝으로 이 가슴아픈 마음을 김부선과 아직도 사랑과 이별에 힘겨워할 이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전한다. 당신들은 이렇게 나중에 아파할 짓 하지 말라고, 누구든, 자기의 행동 때문에, 나중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적어지길.. 그리고 되도록 조금이라도 덜 힘들어지길.. 자기 자신을 좀 덜 괴롭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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