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0일 토요일

고은태 사건이 준 선물




“고은태 사건 같은 것을 예방하기 위해 성희롱 교육을 강화하면 어떨까?” 어떤 분이 제안을 했다. 글쎄다.. 과연 성희롱 교육으로 고은태 사건 같은 유사사건을 예방할 수 있을까?

고은태 사건은 고씨 개인에게 큰 재앙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실보다 득이 많지 않았나? 고은태 사건보다 더 확실한 성희롱 예방교육이 어디있겠는가?



우리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 수면아래에서 훨씬 더 황당하고 이상한 성희롱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한테 고은태 사건보다 더 확실하게 교훈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이 사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뭐냐고? “착각하고 들이대면 좆될 수 있다.”

그런데 뭐하러 이런 유익한 사건을 예방하나? 물론 개인적으로는 슬프고 황당할 수 있다. 특히 고씨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당사자들에게는 가혹하기까지 할 거다. 그러니 누구든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누구든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방법 중에 고은태 사건만큼 효과가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는가?
오히려 우려된다. 고은태 사건같은 걸 예방하자고 나서면, 오히려 폭로를 위축시킬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폭로할 일이 적어지면 좋다. 그걸 위해서 바로 고은태 사건은 굉장한 기여를 한 거다.

성희롱예방교육? 그런게 없어서 이런 사건이 벌어진 건 아니잖는가? 물론 없는 거보다는 낫겠지. 고은태 사건보다 더 확실한 교훈을 줄 순 없겠지만..

회사에서 1년마다 한번씩 시켜준다. 모르긴 해도 고씨도 받았을거다. 가사 받지 않았더라도 고씨같은 경우는 성희롱교육의 주체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갖췄다. 인권교육을 하시던 분이잖는가? 무엇보다도 고씨는 관계에서 동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사과할 때도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무엇이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인지 잘 알고 있었다.

1년에 한번씩 꼬박꼬박 성희롱예방교육을 받는 나도 가끔씩 친구들에게 싱겁고 허튼 소리를 할 때가 있다. “사랑해”. “결혼해줘”. 심지어 결혼한 친구들에게도 가끔은 그런다. 글뿐이 아니다. 하트도 날린다. 물론 그 친구가 불쾌하라고 한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 의도와 상관없이 그 친구가 불쾌했다면, 그것도 성희롱이다.

내가 성희롱이 될 수도 있는 말을 맘 놓고 친구들에게 할 수 있었던 건, 그거 때문에 참기 힘들 정도로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거라는, 농담으로 받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희롱 교육을 안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에 나의 이런 믿음이 단지 믿음일 뿐일 때는 난 가차없이 성희롱 가해자가 되는 거다.

혹시 고씨의 경우가 이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고씨의 말이 내가 하는 것 같은 농담이었는지 아니면 진짜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고씨가 피해자를 신뢰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농담의 상대가 젊은 여자라 좀 다르다고? 오히려 지나치게 젊었기 때문에 농담이 더 유효할 수도 있지 않는가?

결국 고씨가 믿었던 여자사람이 피해자를 자처하며 고씨의 신뢰에 철퇴를 가했으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궁금증은 더해간다. 사실 피해자가 불쾌함이나 고통을 느꼈다면, 피해자에게 그 불쾌함이나 고통을 차단하고 회피할 방법이 여러 가지였을 거다. 그런데 그 피해자는 그것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거절하지도 않았다는 점은 피해자도 인정한다. 그러니 고씨로서는 피해자를 더 믿고 오해를 키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에효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여기까지 하자. 나라고 JS처럼 피해자로부터 2차가해자로 낙인찍혀 가루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

조심스럽게 내가 알고 있던 고씨를 말해본다. 덕이 높거나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피해자가 싫다고 하거나 관계를 끊으려고 할 때 피해자를 괴롭힐 사람도 아니었다. 나름 자존심도 셌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이 사건이 성희롱교육을 받지 않아서 생긴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건을 처음 접한 그날 아침 얘기다. 너무나 황당한 소식에 나는 잠시 고은태씨가 자작극을 하나 싶었다. 왜 그랬냐고? 만들어진 사건을 통해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거나 너무 외로워서 관심받고 싶었구나 싶었다.

도덕과 인권의 무관함을 역설하기 위해, 인권교육을 목적으로 자신의 전인격을 재물삼아 살신상인의 자세로 자작극을 벌인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하지 않고서야 이 사건을 이해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의혹은 아직도 나에겐 유효하다.



댓글 1개:

  1. 그런데 그 피해자는 그것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거절하지도 않았다는 점은 피해자도 인정한다.

    부분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고 쓰시길. 법이 무서우면 삭제도 괜찮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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