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6일 화요일

고은태 사건의 피해자님께 드립니다.


피해자님. 다시한번 피해자님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피해자님께서 느끼셨을 불쾌함과 당혹스러움에 심히 공감합니다. 피해여성께서는 이 사건에 대해 매우 현명하게 대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피해자님! 작금의 피해자님의 트윗글을 보고 있자면,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고 사죄한 후에도 피해자님의 고통이 줄어들지 않고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피해자님 스스로 자신을 복수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하시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피해자님! 피해자님께서 바라신 것은 “단지 성희롱에 대한 인정과 사과”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은태의 사과문에는 “성희롱”이라는 단어조차 들어있지 않습니다. 클리셰인지, 변명인지, “피해자도 원하는 줄 알았다”라는 말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님! 이것을 가해자가 성희롱을 부인한 것으로 받아들이셔야 할까요? 피해자님의 생각처럼 가해자는 성희롱 인정만은 끝까지 피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게 도대체 뭐가 문젭니까? 지금 온나라가 가해자의 행위를 성희롱이라는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가해자를 규탄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식인은 이 규탄분위기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다가 한순간에 가루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아직도 분이 덜 풀리십니까?

이 순간, 자신이 인정한 행동이 성희롱인지 아닌지, 그걸 가해자가 아느냐 모르느냐? 그게 왜 중요합니까? 피해자님에게 가해자가 아직도 그렇게 중요한 사람입니까? 피해자님께서 가해자의 선생님이 되어 가해자를 가르치고 싶으신 건 아닐 것 아닙니까?

잠수를 타서 피해자님을 “2차 가해”에 빠지게 놔두었다고요? 에효. 한순간 자신의 행위를 인정함으로써 전 인격과 명예, 그리고 가정을 박살낸 가해자입니다. 그에게 이 순간 피해자님이 주장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원하시는 겁니까? 피해자님을 2차가해에 빠지지 않도록 말입니까?

피해자님. 2차 가해와 관련해서 위로가 되실지 모르겠지만 유시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유주의자는 부당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며 집단의 위세 앞에 주눅들지 않는다. 술자리의 안주감으로 씹히고 괘씸죄로 걸려도 어쩔 수 없다. 어느 시대든 신조를 지키는데는 언제나 비용이 따르는 법이 아니겠는가?”

피해자님께서는 부당한 권위에 항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깟 집단의 위세 앞에 주눅들어 “2차 가해”를 말씀하십니까? 이 정도 집단의 위세 앞에 주눅들 정도면 그 “거물”의 부당한 권위에는 어떻게 항거하셨습니까? 유시민의 말처럼 “어느 시대든 신조를 지키는 데는 비용이 따릅니다.” 시대의 선구자이신 피해자님에게 어떻게 비용이 따를 수 없겠습니까? 그냥 담담하게 그 선구자로서의 비용에 직면하시면 안되겠습니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우리 시민여성사회는 피해자님께서 그 비용을 혼자 짊어지지 않도록 지원할 것임을 저는 믿어마지 않습니다. 이제는 복수심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피해자님께서는 처음 직면한 이 전대미문의 사태에 당황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시는게 당연합니다. 더구나 “오로지 혼자이며 혼자 판단하고”계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도움을 주시는 분들과 상의하신 후” 부디 복수심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 고통과 불쾌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지시길 바랍니다.
거물 가해자의 부당한 행동에 항거하신 피해자의 용기에 다시 한번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