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이 다소 안정된 지금은 쏙 들어간 얘기다. 한 때 한나라당 홍준표의원이 “성인 한 사람이 집을 두 채 이상 갖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준비한다고 알려져서 큰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홍 의원은 “1가구 1주택이나 1인 1주택까지도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은 있는 자의 것을 뺏어서 없는 자에게 주겠다는 이것은 그야말로 사회주의적 발상에 다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동산 세제 개편도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쯤되면 누구나 예상했겠지만, 뻔한 비판이 빗발쳤다.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재산권 침해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위헌시비였다.
물론 사유재산제도는 자본주의국가의 3요소 중 하나이긴 하다. 또한 소유권절대의 원칙은 “근대” 민법의 3대원칙 중 하나이기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 “근대”에 머물러있지 않다. ‘자본주의’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헌법 가치도 아니다. 아니, 우리나라헌법이 자본주의를 채택한 적도 없다. 헌법에 적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곧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질서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 헌법이 지향하는 것은 현대사회국가다. 자본주의도 현대사회국가의 틀 안에서만 운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 헌법은 제헌헌법 이래 현행헌법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사회국가조항’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행헌법은 전문에서 사회정의의 실현과 기회균등,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 등을 규정하였다. 제31조 이하에서는 사회적 기본권을, 제119조 이하에서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규정하는 등 우리나라가 “사회국가”임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질서가 헌법질서인양 착각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근대입헌주의적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유재산제도와 소유권절대의 원칙이 헌법적 가치이던 시절은 근대입헌주의헌법 시절의 얘기다.
권력분립과 기본권 보장은 근대입헌주의 헌법의 핵심요소였다. 당시 국가의 주된 임무는 국민의 자유보장이었고, 이를 위하여 국가권력은 최소한으로 제한된 범위내에서만 인정되는 제한정부였으며, 이러한 국가권력행사의 범위와 한계에 관한 근거규범이 근대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이다.
근대입헌주의 국가의 경우 국가가 보장하는 기본권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것과는 질과 양을 달리하는 특수한 것이었다. 국가의 기본권보장의무의 핵심은 사회적 다수를 구성하는 무산자들로부터 사회적 소수자인 유산자의 재산적 권리를 법의 이름으로 보장해주는 것에 있었다. 따라서 시민적 자유로서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이 중요시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시되는 것은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의 절대적 보장이었다(김종철, 고시계 2000.10호 참조)
근대입헌주의적 헌법 하에서의 평등권은 개인간의 기회불균형마저도 개인책임주의에 환원하여 제도적 무관심으로 일관하였다. 반면, 현대사회국가의 헌법은 모든 사람은 사회적 지위와 능력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실질적 평등의 실현을 기초원리로 한다.
현대사회국가의 헌법은 모든 인간의 지위와 능력이 동등하다는 추상적 인간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능력이 상이하다는 구체적 인간상을 전제로 하여 절대적 평등이 아닌 상대적 평등, 실질적 평등의 달성을 추구한다.
물론 현대사회국가라고 해서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마구 침해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래서 헌법도 말하고 있다.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바꿔말한다. 법률로 정한다면, 재산권도 제한될 수 있다.
홍 의원이 구상했던 “성인 한 사람이 집을 두 채 이상 갖지 못하게 하는” 법안의 배경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홍 의원의 헌법이 매우 편리하고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산권이 법률에 의해서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홍 의원에 따르면, 부자에게 높은 세금을 과세하는 것은 “있는 자의 것을 뺏어서 없는 자에게 주겠다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랜다. 홍 의원이 생각하는 “사회주의”가 도대체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에 혹시 “사회주의적 발상”을 배격한다는 말이라도 있던가? 혹시 홍 의원의 생각이야 말로, 근대입헌주의적 발상은 아니었을까?
이것만은 분명하다. 시장의 지배는 “지향”해야 할 것이 아니다. 방지해야 할 일이다. 내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목소리다. 우리나라 헌법은 현대사회국가를 지향하고 있고,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제2항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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