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미안하다. 국회의원은 유권자, 혹은 국민의 대변인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 헌법에 따르면 아니다. 헌법은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국민의 대변인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헌법 제46조 제2항) 따라서, 국회의원이 보기에, 국민의 민의가 국가 이익을 거스른다고 생각한다면, 국민의 민의보다,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직무를 행해야 한다.
대의제란 국민 개개인의 개별적 이해관계에 따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경험적 의사’가 국가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객관적으로 추정되는 ‘추정적 의사’가 국가의사가 될 수 있도록 이를 대표할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대표자로 국가의사나 국가정책을 결정하게 하는 통치원리이다.
물론 국가의사와 국민의사가 일치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이상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의제는 이들 양자가 일체되어야 함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양자의 불일치를 전제로, 대표자의 국가의사결정이 전체국민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되도록 하는데 있다.
시에예스는 이렇게 말했다. “경험적인 국민의사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대의기관의 의사만이 진정한 국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대의란 국민의 의사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대의기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대표자인 대의기관의 담당자는 이미 존재하는 국민의사를 확인하여 그것을 표시하지 않는다. 국민의사는 대표자에 의하여 비로소 국가의사로 형성되고 표시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 헌법은 의원의 면책특권을 인정하고 국민소환제를 부인함으로써 무기속위임을 보장한다.
선 거철에 자기 지역을 위해 이것저것을 해주겠다고 공약하는 국회의원들이 많다. 그 공약을 성실히 이행하는 사람도 있긴하다. 그러나, 그것은 국회의원의 직무라기 보다는 국회의원 당선을 위한 일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약이라기 보다는 사약이라고 함이 옳다.
우 리는 이런 사람들을 더 조심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직무를 행해야 할 헌법상 의무보다는 자신이 보다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하기 위해, 국회의원의 직을 이용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문화를 지닌 우리나라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여진다.
헌법 제46조 제2항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국군해외파병이나 FTA와 같은 국가 정책 결정과 관련되어서이다. 자신의 양심이 평화주의자라서, 국군의 해외파병을 소신에 따라 반대하는 국회의원이 있다 치자. 그렇더라도, 이 국회의원은 직무를 행함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의 양심을 접고, 오로지 국익과 관련하여서만 판단하여야 하다. 무엇이 국익에 보탬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하자. 자신의 소신에도 불구하고 해외파병이 국익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방면으로 직무를 행해야 한다. 맘에 안들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헌법이고, 그게 대의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자신의 소신을 접고 국익을 선택할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될까?
이 렇게 국회의원이 민의의 대변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는 국회의원을 더욱 잘 뽑아야 한다. 자신의 소신과 국익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민의와 국익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곤란하다. 일단 뽑고 나서는 4년동안, 그 사람의 국익에 대한 판단을 무턱대고 믿고 신뢰하는 수밖에 유권자로서는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니, 누구를 뽑을지 고민되는가? 하긴 선거철에 “저는 지역이나 국가의 민의가 국익과 충돌할 때에는 헌법에 따라 국익을 우선하여 직무를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국회의원 후보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이렇게 죄다 자격미달일 때에는 그나마 덜 나쁜 놈을 골라 뽑는 것이 상책이다.
혹시,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변인이 아닌 게 심정적으로 영 못마땅한가? 못마땅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우리 헌법이다. 불완전하지만, 역사 발전의 흐름에 따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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