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전환”을 소망하는 비정규직근로자의 목소리를 쉽게 접할 때마다, 또 “비정규직철폐”를 요구하는 진보정당, 진보단체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나는 걸 넘어서서 측은함마저 느낄 때가 있다. 과연 우리의 경제현실에서 정규직 전환이나, 비정규직 철폐가 과연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사용자는 왜 정규직으로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가? 쉽게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른바 이 고용유연성 때문에 비정규직을 채용하면서도, 사용자는 그 고용유연성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는다. 고용유연성에 대한 비용은 고사하고, 사용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저렴하고 더 말잘듣는 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는 방법이 “비정규직”이다.
최 선을 다해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결정을 내릴 것을 요구하는 시장경제 하에서, 이러한 형태의 비정규직고용은 사용자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지도 모른다. 굳이 임금도 비싸고 해고도 어려운 정규직을 사용할 이유가 사용자에겐 없다. 결국 고용유연성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작금의 비정규직 제도는 신분제도의 또다른 이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해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정규직 근로자로 인해 사용자가 향유하고 있는 고용유연성에 대한 댓가를 사용자로 하여금 지불하게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차별금지법은 당연한 일이고, 거기에 더해 사용자에게 비전형고용부담금을 부과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비전형고용부담금을 임금의 일정비율로 정해놓고, (10~20%선) 기간제근로자, 시간제근로자, 파견근로자 등 모든 고용형태에 부과하자는 것이다. 사용자가 이 부담금을 면하기 위해서는 그 고용형태가 “기한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와의 근로계약 즉 정규직 근로계약에 의한 것임을 입증해야만 한다. 국가는 사용자로부터 그 부담금을 징수해서, 해당 근로자에게 환급해준다.
만약, 사용자가 이 부담금을 면탈할 목적으로 근로자와 이면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있다면, 근로자는 퇴직 후라도, 국가에 신고하여 근로기간 동안의 비전형근로부담금을 소급하여 받아낼 수 있다. 비전형근로부담금을 소급해 받아내기 위해 근로자는 한 가지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 자신의 근로가 정규직 근로가 아니었고, 따라서 사용자가 자유롭게 자신을 해고하거나 근로계약만료 후 재계약을 거부했다는 것.
비전형근로부담금. 이 제도가 도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비정규직근로자의 임금이 정규직 근로자보다 높아지게 된다. 딱 비정규직고용부담금만큼.
같은 일을 하면서, 정규직보다 수입이 높은 비정규직 근로자. 상상이 안가는가? 그러나, 이것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고용불안에 노출된 비정규직근로자들에게는 이것이 곧 공정한 거래인 셈이다.
비정규직보다 수입이 낮은 정규직 근로자. 상상이 안가는가? 비정규직근로자를 고용한 사용자가 고용유연성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듯, 정규직 근로자들 또한 고용안정성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당장 그림이 안그려진다면, 우선 지금의 방송사 고용현실을 상상해보라. 정규직 PD나, 아나운서들보다 훨씬 수입이 높은 비정규직 MC, 연기자나 비정규직 성우들을 볼 수 있다.
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할까? 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들이 일을 배우고, 경력이 쌓이고, 실력이 검증된 후엔,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전환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고용은 불안하지만, 수입이 더 높기 때문이다.
물 론 회사의 울타리 밖으로 나갈 자신이 아직 없거나, 고용안정성을 원하는 사원들은 그대로 정규직으로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높은 수입을 원하는 사원들은 사표를 내고 회사문을 박차고 나가 비정규직이 되길 원할 것이다.
사용자의 입장은 어떤가? 비정규직은 사용자에게 고용유연성을 확보해주지만, 비용을 증진시킨다. 따라서 숙련된 직원들이 사표를 내고 비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거나, 다른 회사로 떠나가는 것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작지 않은 손해다. 반면 비정규직인 숙련사원이 정규직 재입사하는 것은 회사의 입장에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회다.
회사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직원들의 직무만족도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비전형고용부담금제도는 이렇게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의 전반적인 노동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는 제도다.
재 계? 당연히 반대하겠지. 걔네들이 언제 자기들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에 찬성하는 것을 본적 있는가? 그래서 현실성이 없다고? 그렇다면, 지금처럼 그냥 살면서, 누군가의 피눈물나는 희생 하에서만 존속할 수 있는 경제성장, 누군가의 피눈물나는 희생 하에서만 존속할 수 있는 정규직생활의 달콤함을 그냥 계속 누려보시든가.
도대체 그놈의 현실성 타령 때문에,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나 이모양 이꼴로 유지될 수 밖에. 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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