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30일 화요일
서북청년단.. 그들은 누구인가?
“그 때 공산당이 많아서 지방도 혼란하지 않았갔시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그러니까니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됐지요.” (김병희 편저, 『한경직 목사』, 규장문화사, 1982. 55-56쪽)
서북청년단.. 그들은 누구인가?
해방 이후에, 이북지역에 소련이 진주하고 나서.
빈몸으로 월남한 지주의 아들들이 많았는데..
이들의 주 출신지역이 서북지역이었다나봐.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하는 거야..
월남의 배경이 이렇다보니,
얘네들.. 빨갱이라고 하면,
눈이 뒤집히는 얘들이야..
종교적으로는 개신교가 주류야.
서북청년단의 85프로가 개신교 신자였다지?
백령도 쪽에서는
빨갱이라는 의심을 당해서
서청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고
서북청년단 계열의 교회에
다녔다는 사람들도 많았대.
서북청년단은 한기총의 뿌리로 보면
별로 틀리지 않아.
피 끓는 얘들이 원한만 가지고
빈몸뚱이 무리지어 내려왔으니..
한마디로 시한폭탄같은 얘들인데..
이승만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서
얘네들을 많이 활용했던 모양이야..
자기 손에는 피뭍이기 싫고..
서북청년단얘들이 대신해주면 좋고..
뭐 그런 거겠지?
특히 제주도 4.3 항쟁과 서북청년단은
뗄레야 뗼수가 없어.
3.1절 기념행사에서 촉발된
시위 발포사건이 빌미가 되었는데,
미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이
그 사건을 폭동으로 규정짓고,
다른 지방의 응원경찰을 대거 투입하여
물리력으로 무질서한 제주의 치안을
바로잡겠다는 뜻을 담은 포고문을 발표했거든?
<강요배-서청입도(西靑入島)>
그런데, 그 때 서북청년단원들은
경찰들과 함께 제주도에 들어왔어..
경찰들 중에서도 서청단원출신들이
적지 않았다고 하니까..
그 위세가 등등했나봐..
그 위세를 가지고
못할 짓을 참 많이 했다지?
주민들을 모아놓고 서로 뺨떄리기를 시켰는데..
할아버지와 손자 간에도 그걸 강요했대..
세게 때리지 않으면, 죽도록 팼대..
돈을 모아가거나 소를 끌고 가야
그 짓이 끝냈대..
부녀자를 겁탈하고 고구마를 쑤셔대며
킬킬대는게 일쑤였대.
서청이 빨갱이라고 낙인찍으면,
그 동네 사람들 보는 앞에서
사위와 장모를 성교하게 한 후, 살해했대
(김관후, 제주의 소리)
<강요배-겁간>
제주도 서청단장 김재능이는
그 중에서도 제일 포악한 놈으로 꼽혔는데..
복수가 두려워 죽을 때까지 숨어지냈대.
이러한 서청의 횡포에 반발하기 위한 항쟁이
바로 제주 4.3항쟁이었어.
이 때 일 때문에
아직도 제주도 사람들 중에
육지 사람.. 특히 개신교 소리만 나와도
이를 북북 가는 사람들이 많아..
서청을 떠올리기 때문이지..
이런 서청단원들이
4.3 항쟁이 인정받기 전까지만 해도..
국가유공자 대접을 받았다지?
서북청년단 재건위라는 놈들이 나온 모양인데..
자신들은 이 정권의 유지를 위해
테러도 불사하겠다..
뭐 이런 생각 가지고,
그런 짓들을 하는 모양인데..
멍청해도 이렇게 멍청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나
난 도무지 이해할 도리가 없어..
지금 이 시점에서
서북청년단과 그 포악함을 떠올리게 한다면,
제 정신인 사람들은
당연히 4.3항쟁이나 4.19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냐?
그 놈들.. 테러가 아니면 유지되기 힘든
정권의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정말 갈 데까지 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대명천지에
서북청년단 재건을 입에 올릴 수 있지?
서북청년단재건위대변인이라는 자 왈,
서북청년단이 없었으면 벌써 적화되었거라나?
서청들한테 당하는게 적화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사고구조야말로 연구대상. 후안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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