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을 때려서 뇌사상태로 빠지게 한 사람. 그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것을 두고, 어제 하루종일 시끄러웠다. 법이 잘못되었다는 사람도 있고,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도둑 무서워서 살겠냐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도둑을 때린 죄로 실형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법과 판결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조차, 이 사건의 자세한 사건의 내막을 잘 알지는 못한다. 사건을 판단하는데 주어진 정보는 제한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둑을 때려서 실형을 살게 된 사람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것은 혹시 우리 안에 도둑은 때려도 괜찮다는 의식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나 또한 그러하다.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한다. 다만, 신문기사를 통해 알수 있는 주어진 정보들을 취합해서,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타진해보기로 했다.
지난 3월8일 새벽 3시15분께다. 원주시에서 집에 귀가한 최모(21)씨. 누군가가 거실 서랍장을 뒤지는 것을 발견하고, 순간 도둑임을 직감하고 격투 끝에 몰래 집으로 들어온 김모(55)씨를 제압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최씨는 도둑의 머리 부위를 발로 여러차례 차고 알루미늄 빨래 건조대로 등 부분을 수차례 내리쳤다. 하지만 이로인해 도둑은 의식을 잃어 응급실로 후송돼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시간이 눈에 들어온다. 새벽 3시15분. 야간이다.
이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형법제21조 3항 탓이다. 이 조항은 과잉방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야간인 것은 틀림없어서, 형법제21조3항이 적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는데, 이 사건 판결을 볼 때,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과 관계없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점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최 모씨가 수사기관에서 조서를 작성할 때가 중요하다. 최모씨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양심에 거스르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개연성이 크고, 이에 따라,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모씨가 당시 자신의 심리상태를 설명하면서, 만약 자신의 상태를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과 관련없이) 침착했던 것으로 진술하거나, 침착한 상태였다고 확신케할만한 정보를 제공한 사실이 있다면? 형법 제21조3항의 적용은 물 건너 간 거다.
둘째, "도둑"이 눈에 들어온다.
강도가 아니라는 거다. 사실 절도는 순수재산범이다 그런데도, 보통의 경제범과는 심하게 다르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피해액이 훨씬 큰 배임, 횡령, 사기에 비하자면 더더욱 그러하다. 일단 사건을 강력사건으로 분류할 뿐만 아니라, 세간의 인식도 강도와 크게 다름없이 보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강도로 발전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그러한 것 같은데, 강도로 발전하지 않은 이상, 도둑은 그냥 도둑이다. 게다가 이 사건 도둑은 흉기조차 소지하지 않은 순수한 도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이 정의를 추구하는 공정함에 무게를 두기 보다는 그저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득권층의 도구로 쓰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법은 의외로 기득권층의 폭력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지만 피지배계층 국민들의 폭력에 대해서는 매우 엄정하다"
파워트위트리안인 김빙삼 옹께서 이 사건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나는 의심한다. 도둑을 일반적인 경제범과 다르게 취급하거나 도둑에게 지나친 공포심을 가지는 것이야 말로,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득권층의 도구로서의 법과 관계가 깊지 않는가? 실로 공정한 사회라면, 도둑이든, 배임이든, 사기든, 똑같이 취급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격투 끝에 몰래 집으로 들어온 도둑을 제압해 경찰에 신고하셨단다.
물론, 그 도둑? 현행범이다. 그리고,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212조) 또한 최씨처럼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 아닌 자가 현행범인을 체포한 때에는 즉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에게 인도하면 된다 (형사소송법 213조) 최모씨는 수사기관에 인도할 생각으로 직접 체포를 시도한 듯 보인다.
문제는 그 체포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지나친 폭력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자신이나 가족의 신체의 실체적인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폭력은 제압과 체포에 꼭 필요한 정도에 그쳤어야 했다. 만약 쓰러진 도둑의 머리부위를 발로 여러차례 찼거나, 불필요하게 도구를 사용하였다면, 그것은 "폭행"에 해당한다.
만약 최씨의 조서에서 최씨가 방위의사를 확인할 수 없고 체포의사만 드러냈다 치자. 만약 추후 방위의사를 드러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관적이지 않고, 변호사의 조언을 받은 이후에 말이 바뀐 것이라면, 당시 최씨에게는 방위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판사가 믿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다. 이래서 변호사의 조언은 처음부터 받아야 한다. 변호사가 오기 전에는 묵비권을 행사해야 할 이유다.
경찰수사단계에서의 정당방위 8가지 기준이라는게 세간의 조롱과 함께 돌아다닌다. 이 8가지 기준이라는거? 경찰 '내부' 지침이다. 수사시에 정당방위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검찰과 법원에서 판단하게 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경찰이 체포를 할 때, 당할 수 있는 폭력을 제압할 때 준수할 지침의 성격도 강하다고 보여진다. 도망가는 범인의 등에 총을 쏘지는 말라는 거다.
법조문에서는 정당방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1)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을 것,
(2) 자기와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일 것,
(3)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법이 이렇게 정당방위의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는데는 특별한 이유와 법치주의의 철학이 담겨있다. 법치사회에서 사형(私刑, 사적형벌)이나 복수는 금지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당방위가 자칫 사형이나 복수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선빵을 자기 폭력의 알리바이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거다. 상대방의 선빵은 자신의 폭력범죄를 유발한 동기로서, 형량에 참작할 인자가 될 수는 있을 지언정.. 자신의 위법행위에 대한 면허가 될 순 결코 없다.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나 강도를 발견하였는가? 가능하다면 퇴로를 차단하고 지체없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최선이다. 만약 직접 체포가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폭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자신이 있을 때만 직접체포를 감행하여야 한다.
만약 현행범을 직접 체포한답시고, 오로지 체포와 제압을 목적으로 물불가리지 않다가는 이처럼 법의 처벌을 피할 길이 없다는 거. 이번 사건이 주는 큰 교훈이다. 현행범에 대해 우리에게 허락된건 폭행이 아니라 체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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