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6일 화요일

세월호 그 날 이후, 여덟달 째 매일 같은 내용이 적혀있는 아파트 작업일보



아파트의 기계실점검일지와 작업일보를 검사했다. 그러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매일 똑같은 내용이 적혀있는 것이었다. "벤츄레라 교체요망", "지하저수조 점검구 잠금장치 파손" 무려 여덟달 동안,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벤츄레라가 뭘까? 지하저수조는 도대체 뭘까? 설비주임은 왜 이것을 매일 똑같이 적어서 소장의 결재를 받는 걸까?

설비주임을 불러올렸다. 이유를 물었다. 그 이유는 세월호 사건에 있었다. 그 전부터 설비주임은 우리 아파트에서 보수가 필요한 내용 가운데, 안전과 관련되어 있었던 내용들에 대해 관리소장에게 보고했었단다.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관리소장은 거기에 들은 둥 만둥 했었던 모양.

그런던 차에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을 목격한 설비주임님은 정신이 번쩍 드셨다고 했다. 지하 저수조 잠금장치가 파손된 경우, 누가 나쁜 맘을 먹으면, 우리 입주자들이 먹는 식수에 끔찍한 장난을 칠수도 있단다. 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라도 가려놔야겠다는 다급한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받아들여지든 말든 일지에 같은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러던 것이 벌써 여덟 달째라는 것이다. 살펴보니, 같은 내용이 적히기 시작한 것이 정말로 4월 17일부터였다.


벤추레라? 옥상 환풍을 위한 프로펠라를 말하는 거란다. 그런데, 이게 언제부터인가 소리가 나서 주민들의 민원이 있었단다. 구리스를 발라도 해결되지 않자, 소장의 지시에 따라 벤추레라를 묶어놨다고 했다. 벤추레라가 돌아가지 않으면, 환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화장실에서 피우는 담배연기 등이 실내로 확산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소장은 자신이 벤추레라를 묶어놓으라고 지시한 기억은 없다고 발뺌했다.

100만원 이하의 지출은 관리소장 전결사항. 입대의에 보고할 필요도 없었다. 입대의회장의 싸인만 받으면 바로 집행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관리소장의 말인 즉, 당시 입대의회장이 승인해주지 않을 것으로 지레 예단하고, 입주자대표회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셨단다. 자신은 보고하지도 않은 주제에, 입대의회장 탓을 하고 있다.

불과 몇 만원도 들지 않는 일들이었다. 매달 나를 볼 때마다 달려와, 입대의의결이 필요한 공사에 대해 설명하던 소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돈이 되지 않는 아파트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은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도대체 이 소장은 우리 아파트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걸까?

도대체 세월호 사건이 터지지 않았으면, 이런 내용조차 알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까마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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