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가정폭력의심사건 신고후기




일요일 아침, 나를 깨운 것은 어느 남자의 폭언이었다.

"씨팔뇬아" 우당탕탕~!

아래 층 쪽이었다. 놀래서 일어나 침대에 앉았는데.. 점시 멈췄던 폭언과 물건던지는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그만하나 싶으면, 또 이어지고 그만 하나 싶으면 또 이어졌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아마도 아래층쪽에  분노조절에 애로가 계신 분이 이사온 모양이다.

내려가서 경비아저씨를 모시고 올라왔다. 바로 아랫집인 듯 했다. 현관문이 열려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중년남자가 부서진 가재도구를 복도로 내놓고 있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별일 아닙니다."

남자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뭔가를 더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경비아저씨를 내려보내고,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이제는 멈추겠지. 그런데, 잠시 후, 또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우당탕탕~! 씨팔뇬아"

다시 뛰어내려갔다. 조용하다. 그놈의 폭언소리는 내가 내려만가면 멈춰졌다. 아까 그 집이 맞긴 맞는걸까? 그 옆집 벨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동대푭니다~"

그 댁의 아주머니가 문을 열었다.

"소리나는 곳이 옆집 맞나요?"

"... 7시반부터 "

조용한 대답에는 우려와 짜증이 섞여있었다.  핸드폰시계를 보니 10시다.  집에 다시 올라왔다. 이를 어쩌나. 텔레그램 친구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다.

"뭐해? 언능 112 신고해~" "가정폭력방지법이 있으니 경찰에 집에 진입할 거야" "언능 전화해! 112"

"국가공권력 그럴 때 써먹으라고 세금내는 거야." "  빨리" "그러다가 누구하나 죽으면 어떻게 하려구"

"지금 경찰이 진입해서 그 상황을 종료시키는 게 가장 근선무"

텔레그램을 나누던 중, 또 온동네가 떠나가게 욕소리가 들렸다.

"야~ 이 씨발뇬아~"

112로 SMS 문자를 쳤다.

"저기요, 경찰이죠? 밑집에서 부부싸움을 하는데요.. 아니 부부싸움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를 잡는 것 같은데요"

"아침부터 지금까지 물건던지는 소리,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답문이 왔다.

"정확한 위치를 말씀해주세요" "^%$#동 ^%$# 아파트인데요"

"저는 1234호 사는데, 소리는 1134호쯤으로 추정됩니다."

"몇 호인지는 모르시나요?" "저희 밑집 1134호 같습니다. "

"경찰관 출동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채 10분도 지나지않아, 핸드폰이 울렸다.

"경찰관입니다~ 현장에 왔는데요, 지금은 진정이 된 거죠?"

"아! 경찰관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내려갈게요."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경찰관 두명이 문제의 집 앞에 서 있었다.

"이 집이 맞습니까?" "네"

탕탕탕.. "경찰관입니다. 문좀 열어보세요. "

안에서는 침묵만이 흘렀다.


다른 경찰관은 복도에 내놓여있는 부서진 가재도구를 살펴보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내가 들은 소리를 경찰관에게 설명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현관문을 열고 여자가 나왔다.

"무슨 일 있습니까?"

"별일 아닙니다."

"잠시 나와보세요."

출동한 경찰관은 능숙했다. 여자는 나왔고, 현관문이 닫혔다. 밖으로 나온 여자는 생각보다 어려보였다. 연신 침착하고 차분하면서도 단호히 "별일 아니라"고 얘기하던 여자의 목소리.

별일 아니라는 말에도 경찰은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최선을 다해 상황을 파악해보려는 마음이 읽혔다.

"몇 살이에요?" "열 일곱살이요."

어휴, 고등학생이다. 예뻤다. 이 집 딸인 듯 했다. 대답이 되풀이 될 때마다 목소리는 점점 잠겨왔다. 눈가엔 울음을 참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곧 현관문을 열고 남자가 나왔다. 현관문 밖에서 경찰관이 돌아가지 않고, 딸과 오랫동안 얘기하는게 불안했었을까? 남자는 술에 취해있었다. 이마에 빨간 생채기가 나 있었다. 남자는 말했다.

"아니 성질이 나면 내 집에서 소리도 지를 수 있고 그런거지. 도대체 누가 신고를 했답니까?"

경찰관 뒤에 있던 내가 답했다. "이 아파트 동대표인데요, 내가 신고했습니다. "

남자는 이게 신고할 일이냐며 나에게 따지고 들었다. 경찰관은 나에게 올라가라고 손짓했다. 불필요한 다툼을 막으려는 듯 보였다. 집으로 올라왔다.


애써 울음을 참으며 잠긴 목소리로 "별일 아니라"고 말하는 애띤 여고생이 눈에 밟혔다. 출동한 경찰관에게 문자를 쳤다.

"경찰관님. 혹시 가내에 진입해서 내부 사람들 안전을 확인하는 건 법적으로 어려운 일인가요?"

15분쯤 후, 답문이 왔다.

"안쪽의 상황은 확인하였고, 딸도 이상없다고 하여 한번 더 주의를 주었습니다.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있을 경우 다시 한번더 신고해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

경찰관은 능숙하고 유능해보였다. 아마도, 남자와 얘기를 하다, 동의를 얻고 집에 들어가 확인을 한 듯 했다.



경찰관이 돌아간 후 30분쯤 되었을까?

또 욕설이 들린다. 이제 대놓고 베란다에서서 창 밖으로 욕설을 울부짖는다. 답이 없는 이웃이다.

"씨팔뇬 새끼.. "

도대체 저 남자의 분노는 무엇 때문인 걸까? 저렇다고 분노가 해결될 리는 없는데..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는데 애로가 있는 남자, 저 안에서 또 공포에 떨고 있을 가족들.. 욕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쓸어내려야할 우리 아파트 주민들.. 아까 출동한 경찰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지금 베란다에 서서 창밖으로 온동네가 떠나가게 '씨팔뇬' 소리지르고 있는데요..  처벌이 무겁지 않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경범죄처벌법 위반 범칙금 스티커라도 발부하시면 안되겠습니까? 소란죄나? 불안감유발 조항에 해당되지 않겠습니까? "

경찰관은 침착했다.

"가능하긴 합니다만, 신고하신 분이 동대표님인 거 저 사람이 아는데요, 이웃간에 앙심을 품을 수도 있고요, 더 큰 다툼이 생길수도 있고요. 제가 한번 다시 가서 주의를 주겠습니다."

"에효, 제가 다른 주민들이 피해보는 거 보고만 있을 순 없잖습니까? 전 괜찮고요. 하여간 여러차례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경찰관님."

잠시 후 경찰차가 한번더 다녀간 이후에야, 아래집은 조용해졌다.



오늘 회사에 있는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여자경찰이었다. 여성계라고 했다.

"험한 소리가 이번이 처음인지, 자주 났었는지.. "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현장출동경찰관을 통해서도 상황을 다시 파악하시겠단다. 여자경찰관이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런 일이 밑집에서 또 발생하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 때마다 신고해달라고.

가정폭력 의심사건은 현장경찰관이 상황종료하더라도, 입건여부와 무관하게 관할서 여성계에서 주시하면서 관리하는 모양이었다. 나름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았다. 이처럼 경찰의 대응이 믿음직한 경우가 나에겐 처음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