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7일 토요일

사랑하는 교황님! 여기 이의 있습니다!

 
"폭력적인 대응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제 좋은 친구인 가스파리 박사가 저희 어머니를 욕한다면, 저한테 한대 맞을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정상적인 거라고요. 도발하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을 모욕하면 안됩니다. 다른 종교를 조롱거리로 삼으면 안됩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종교나 남의 종교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조롱하며 놀립니다. 그들은 도발자들입니다. 모든 종교는 그 자체로 존엄합니다. 모든 종교는 삶과 인간을 존중합니다. "

사랑하는 교황님의 화술과 비유는 정말 지혜롭다. 그리고 놀랍다. 모두 옳은 말씀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교황님의 이 말씀은 실로 모든 사람들에게 권장할 만한 하다. 여기까지는 그러하다.  그러나, 교황님의 이 말씀과 이어지는 다음 말씀과의 인과관계를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종교와 관련한 표현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근본적인 권리이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타인의 신앙을 모욕할 때는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야 합니다."

당황스럽다. 올바른 삶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아름다운 도덕적 의무규범을 말씀하시다가 느닷없이 법과 인권에 대한 문제에 이르셨다. 남을 욕했다고 해서 법적으로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남을 욕했을 때 한대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 사이에는 전혀 모순이 없다.  매우 슬프게도 사랑하는 교황님께서 도덕과 법, 종교와 인권을 구분하지 못하시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자유론과 아레오파지티카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 볼 때, 사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는 종교에 대한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무엇이 우리를 진리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역사의 해답이 바로 표현의 자유인 것이다. 옳든 그르든 자유롭게 떠들게 하는 것만이 우리를 진리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스러운 교황님께서는 이 논의를 한순간에 200년 전으로 돌려놓으셨다. 오오오 하느님. 교황님을 돌보소서.

계속해서 교황님의 말씀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살인을 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살인하는 것은 부조리한 일입니다."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 역시 자기 종교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 부조리하든 조리하든 매우 슬프게도 종교의 이름으로 살인을 하라고 가르치는 종교도 있기 때문이다.

조리와 부조리를 따지는 것은 원래부터 종교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교회 역시 이성의 영역을 떠나 종교의 영역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확증편향에 따라 이 영역을 공고히 해왔다. 그것은 그냥 어떤 사람들의 신념체계일 뿐이다. 종교 역시 옳고 그른 영역이 아니다.

이슬람 종교인들의 선택을 그들의 종교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하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들이 왜 그렇게 바보짓을 하는지 교황님도 그 심정 이해하시지 않는가? 이번 사건처럼 그들이 우리들의 인권을 위협하는 한도가 아니라면, 나 역시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가톨릭교회 역시 종교와 교리의 이름으로 살인을 자행했던 가장 지독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종교 중에 하나라는 것을 이제 와서, 그것을 혼자 반성하고, 이제와서 자신 종교의 잣대로 다른 종교를 평가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이제 와서 어줍잖은 종교적 양시양비론은 얼마나 더  위험한가?

여기서 난 한국의  철학자 박구용의 말을 들려드리고 싶다. "도덕이 의무를 강조한다면, 법은 권리를 중시한다. 법은 구체적 행위만을 문제시함으로써 내면세계를 자유로운 권리 공간으로 허용하며, 법률로 금지하지 않는 행위는 비록 반도덕적이라고 할지라도 처벌하지 않으며, 범법자의 행위를 처벌할 뿐 그의 인격은 처벌 불가능한 권리로 인정한다. 법적 처벌은 범법자를 공동체로부터 유폐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구성원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때문에 다원성을 존중하는 현대사회에서 법은 도덕보다 약하지만 유일한 사회통합의 원천인 것이다."

인권도 그러하다. 인권은 침해자를 인류사회에서 유폐시키는 것이 아니다. 인격을 가진 인류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한다. 이 때문에 다원성을 존중하는 현대사회에서 법과 인권은 도덕과 종교보다 약하지만 유일한 인류사회 통합의 원천이다.

도덕 재판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 법 공동체 구성원들이 합의할 경우 도덕적 규범은 법 규범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러나 인권은 다르다. 인권은 누군가의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종교와 같은 남의 체계텍스트를 욕했다고 해서 법적으로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표현의 자유는 치열한 논의 속에서 역사적으로 확립된 인권에 속한다. 단순히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한순간에 몰각할 수 없는 법이다.

사랑하는 교황님께서는 지난 방한 직후 이렇게 말씀하신바 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떼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해서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내 위로의 말이 죽은 이들에게 새 생명을 줄 순 없지만,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면서 우리는 연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 서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

그리고 지금 얻어맞을 각오를 하고, 자신의 자유를 실현한 언론인 12명이 사망했다. 11명은 중상을 입었는데, 이 중 4명은 심각한 상태다. 그들의 종교는 "자유"였다. 그들의 종교 역시 그 자체로 존엄하다. 그들의 종교 역시 삶과 인간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유라는 자신의 신앙 때문에 순교했다. 지금 그들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선언하며 양시양비론을 펼치는 교황님께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종교와 관련한 표현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근본적인 권리이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타인의 신앙을 모욕할 때는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야 합니다" 교황님의 이 말씀을 교황님께 다시 돌려드린다. 그리고 나의 신앙을 고백한다. Je suis Charlie. 나 역시 샤를리다,

내가 교황님이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차라리 니체의 말을 인용하시는 편이 나았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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