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9일 토요일

책임을 전제했을 때만 한정되는 자유의 의미






오래 전에 살다간 횽님들 중에 디오게네스라는 횽님이 계셨어. 이 양반 스타일이 무지 자유로웠대. 다들 알지? 알렉산더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고 물으니까.. “지금 당신이 해를 가리고 있어서 불만”이라고 했다는 바로 그 횽이야

그 횽. 철학하는 스타일이 이래. 광장에서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막 치는 거야.. 모여있는 사람들이 소리 치고.. 아녀자들은 꺅꺅 대고 난리나지 않았겠어? 그럼, 딸딸이치던 손으로 배를 한번 쓱 문질러. 그리고 한마디 하는 거지.. “ 자지를 문지러서 성욕이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배를 문질러서 배고픔이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에 말이야, 누군가 광화문 이순신장군앞에서 이 디오게네스처럼 자유롭게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는 사람이 있다 치자. 오해하지 마. 내가 그러고 싶다는 건 절대 아냐..

이게 과연 행위자의 자유인가? 여기서 의견이 갈려. 자유라는 친구도 있고. 자유가 아니라는 친구도 있는 거지. 일단. 광화문광장에서 이 디오게네스처럼 자유롭게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는 것을 자유라고 말하는 친구를 한번 따라가 보니까. 뭐라고 하나 봤더니. “자유이긴 하지만, 책임을 져야” 한다네?

광장에서 자유롭게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겠다는데. 도대체 무슨 책임을 져야 물으니까. 공연음란죄의 형사처벌을 받고,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장되는 것.. 이게 바로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이라는 거야..

아! 그렇군.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길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자유는 있을지 몰라도, 그 자유에 대한 댓가는 아주 혹독하게 치러야 하고. 그 혹독한 댓가가 바로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이라는 게 바로 그 사람의 주장인거야.

그런데 궁금해졌어. 이렇게 그 행위에 대한 혹독한 대가가 예정되어 있고, 그 혹독한 대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는 행위. 그 예정되어 있는 혹독한 대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위축되어 그러한 행동을 하길 감히 삼가는 상태. 그런 상태를 과연 그런 행위에 대해 자유로운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자유의 정의에 대해 한번 다시 톺아보자고.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그런데, 그 행위에 대한 혹독한 대가가 예정되어 있고, 그 혹독한 대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감히 실현할 수 없는 상태가 정말 “자유”로운 거 맞냐고?

광장에서 자유롭게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는 사람이 형사처벌을 받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당하는 건.. 주어진 금기와 규율을 어긴 데 대한 형벌일 뿐이지. 자유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고!! 그게 자유였다면 애초부터 책임을 요구하지 않겠지. 책임을 요구한다는 건.. 애초에 그런 자유가 없다는 거랑 마찬가지인거라고.

여태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자유'의 의미를 '책임의 한 전제조건이 되는 것'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인간을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단순히 전개시키는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에 불과해. 마치 책임이 전제된 상태에서 자유를 인정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자유를 구속하는 모든 것들을 사람들로하여금 아무 비판없이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것이지.

우리 인간이 주어진 것을 단순히 전개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창조적으로 자기 형성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길 원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 우리는 단지 그 법에 복종하기만 해야 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러한 법을 스스로 만들거나 폐지하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존재인가?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까놓은 채 딸딸이를 치길 원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매장시키는 사회.. 우리는 단지 그러한 사회에 복종하기만 해야 하는 존재인가? 그러한 사회를 스스로 만들거나 바꿀 수 있는 존재인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한 마디는 이런 고민들을 모두 차단해버린다고.

물론 현대판 디오게네스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절대 아냐. 그게 법이든, 금기든, 현대판 디오게네스같은 사람들의 자유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 외에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는 거지..

디오게네스의 자유를 존중해주자면, 침해할 수 밖에 없는 다른 사람의 더 중요한 자유가 아니면, 우리는 디오게네스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거야.. 여기서 우리가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많은 사람들의 “불쾌하지 않을 자유”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물론 많은 사람들이 불쾌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참 아름답고도 중요한 일이야. 그런데, 누군가가 불쾌하다는 이유로 다른 누군가의 자유를 부정할 수 있다면, 애초부터 자유를 말하는 게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아무도 불쾌하지 않게 만드는 누군가의 행동에 대해 혹시 “자유”가 문제되는 거 본 적 있어? 원래 “자유”라는 관념은 말야, 자기들이 불쾌하다는 이유로 남의 행동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싶어하는 인간들 때문에, 그런 억압자들에 반대하기 위해서 생겨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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